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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 영웅의 ‘트라우마’ 극복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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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 영웅의 ‘트라우마’ 극복 방식
  • 권도경 세명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인문기술연구소 소
  • 승인 2014.09.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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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기술 랩 | 한국적 고전영웅서사 원형의 특질②


주몽, 의부 금아왕 떠나 정신적 외상 치유
친부모 트라우마는 국내서사엔 사례 없어
부모의 패배 극복 과정은 영웅소설 장르

앞서 이야기했듯, ‘부모 트라우마(trauma)’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과 다른 코리안 슈퍼히어로물의 차별성이 기반 해 있는 한국고전영웅서사 코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주몽신화>에서는 주몽이 살고 있는 동부여란 세계의 현재 주인인 금와왕이 바로 영웅에게 트라우마를 안기는 부모가 된다. 신이 되는 것이 예정되어 있는 주몽은 의붓부모인 금와왕이 만든 현 동부여의 질서에 선천적으로 순응할 수 없는 새로운 이념의 소유자다. 금와왕이 구축해 놓은 현 질서와 주몽이 미래에 성립시킬 질서는 양립할 수 없다. 금와왕이 알로 태어나 탄생 직후 비범성을 보이는 주몽을 내다 버리는 것도 주몽이란 존재가 자신이 만든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자신의 대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금와왕의 주몽 유기(遺棄)는 본질적으로 살의(殺意)를 내포하고 있다. 미래 세계의 주인이 될 아기를 현 세계의 주인이 살해하고자 하는 의도다. 만약 이 의도가 관철된다면 주몽은 비록 태생은 다르지만 종말은 민중영웅인 아기장수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주몽이 금와왕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끝맺었다면 그의 출신 신분 역시 수정되어 신화적 영웅에서 민중 출신의 영웅으로 변경되었을 것이다. 앞서 지적했다시피 아기장수란 성공했다면 신성혈통의 신화적 영웅이 됐겠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민중혈통의 영웅으로 남은 신화적 영웅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기 바란다.

주몽이 신화적 영웅으로 남은 것은 의붓부모에게 살해당할 위기에서 구해주는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출·양육되어 살아남는데 성공한 주몽은 금와왕의 질서로부터 분리되어 나가는 방식으로 의붓부모와의 직접적인 대결을 피한다. 대신 이주한 세계에서 남의 부모와 투쟁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념을 실현한 새로운 질서를 창안한다.

이처럼 신화적 영웅일대기에서 부모에 의한 트라우마의 극복은 분리하는 방식으로 의붓부모가 강제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며, 이 과정에서 영웅으로 탄생된다. 드라마 <주몽>은 이러한 주몽의 신화적 일생을 매체에 얹힌 일종의 미디어소설(media novel)로 재생산 해낸 경우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둘 것은 자식인 영웅의 부모가 친부모냐, 아니면 남의 부모냐는 한국고전영웅서사원형의 하위 유형을 구분하는데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의붓부모가 친부모가 되면 영웅일대기로 전개되기 이전 단계의 신화적 영웅서사인 <단군신화>가 된다.

<단군신화>는 기아와 구출·양육, 고난과 시련의 <주몽신화>와 같은 영웅일대기로 구체화되기 이전 단계의 신화적 영웅담이다. 널리 인간세상을 복되게 하는 새로운 이념을 지닌 환웅은 하늘의 질서를 지배하는 아버지 환인의 이념에 반하는 존재다. <주몽신화>와의 차이점은 이러한 부자 사이의 이념의 차이가 자식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지 않는다는데 있다.

<단군신화>의 환웅은 아버지가 자기 이념에의 순응을 강요하기 전에 발 빠르게 아버지가 주도하는 질서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이동한다. 환웅이 옮겨온 세계는 주도적인 이념이 존재하지 않는, 질서 성립 이전의 세계다. 아버지와 이념적으로 충돌하기 전에 아버지의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나왔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지만, 분리의 시기가 늦어질 경우 친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자식의 트라우마가 초래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고전영웅서사에서는 친부모에 의한 자식의 트라우마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바가 없다. 대신, <단군신화>가 함축하고 있는 이 문제의 소지는 <세종신화>를 현대적으로 재생산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이전 시대 신화적 영웅인 아버지가 만든 태종조선의 질서를 세종조선의 구축을 통해 해체해 나가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부모 트라우마의 극복 과정이 주인공을 영웅으로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군신화>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와서 미디어소설로 이행되면서 친부모에 의한 자식의 트라우마 문제를 소설적으로 확장한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의붓부모가 남의 부모로 완전히 넘어가 버리게 되면 신화적 영웅서사는 영웅소설적 영웅일대기로 장르가 이동하게 된다. 영웅소설의 주인공은 내 부모가 아니라 남의 부모가 가한 트라우마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영웅으로 탄생하는 자식이다. 그런데 남의 부모가 가한 트라우마는 주인공 영웅인 나의 것인 동시에, 내 부모의 것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영웅은 남의 부모에 의해 야기된 내 부모의 트라우마를 나의 것으로 이어받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성공한 영웅이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영웅소설적 영웅일대기에서 남의 부모와 나의 부모는 현 질서의 주도권을 두고 격돌하는 두 명의 영웅이다. 전자인 남의 부모는 현 세계의 기득권을 쥐는데 성공한 영웅이고, 후자의 내 부모는 기득질서로부터 밀려나 궁극적으로 패배한 영웅이다.

문제는 남의 부모에게 내 부모가 패배하면서 발생한다. 남의 부모와 내 부모의 이념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내 부모는 신화적 영웅이 만든 세상의 법칙을 주도할 권력을 획득하는데 실패하는 반면 남의 부모는 내 부모를 몰락시키고 신화적 영웅이 만든 세계 질서의 관리자가 되는데 성공한다. 나의 트라우마는 남의 부모에 의해 내 부모가 겪은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나의 것으로 떠안으면서 시작된다.


내 부모에 의한 트라우마와의 차이점은 강제성이 없다는데 있다. 내 부모와 내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부모와 내 부모가 충돌한 결과인 내 부모의 트라우마가 나의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방식이다. 부모의 죽음 혹은 가족의 해체에서 비롯된 기아와 유리·걸식의 경험이 자식인 영웅의 트라우마 내용을 구성하며, 평생 이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자식인 영웅의 행로는 남의 부모와 대결하여 승리함으로써 해체된 가족을 회복하고 몰락한 가문을 재건하여, 남의 부모가 나의 부모에게 안겨준 패배의 트라우마를 치유해나가는 여정이다. 예컨대, 영화 <최종병기 활>의 경우가 바로 이러한 영웅소설적 영웅서사원형을 현대적으로 재생산 한 경우다. 이야기는 인조의 수구적인 이념을 중심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고자 하는 남의 부모들에 의해 광해군의 진보적인 이념을 고수하고 있던 내 부모가 살해당하고 가문이 멸문당하면서 시작된다. 부모의 트라우마를, 내 부모의 유사형제인 친구들에게 구출·양육되어 성장한 귀족영웅이 국가와 민족을 국난(國難)으로부터 구하는 행로 속에서 치유해 나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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