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교육에 지금 바로 필요한 것
상태바
교육에 지금 바로 필요한 것
  • 김기남 교수)
  • 승인 2014.09.15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움터이야기 | ‘품위 있는 눈치’

남의 마음 생각하고 읽을 수 있는 진정성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
4년마다 바뀐다면 백년대계 누가 지키나


눈치는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또는 어떤 주어진 상황을 때에 맞게 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렇게 따지면 나는 그야말로 ’눈치가 발바닥’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때문에 모든 게 어렵고 조심스러워 최선을 다해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학생들 눈치도 엄청 본다. 다른 교수님께선 그게 내 인기의 비결이라 말씀하시지만, 사는 게 참 힘들고 피곤하다.


현생 인류가 눈치 빠른 원시인들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진화한 것이라더니 눈치 보는 것도 유전인가보다. 아들아이가 5살 유치원 때 처음으로 친구 집에 초청을 받아 살뜰하고 세심한 친구 엄마가 챙겨주는 신세계를 경험하고 왔다. 그런데, 몇 달 뒤 만난 그 친구엄마는 “동우엄마, 동우가 눈치를 많이 보더라고요”하며 몹시 조심스럽게 얘길 꺼냈다. 일하는 엄마를 가진 운명으로 엄마 보단 다른 육아도우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음을 잘 아는 친구 엄마는 그게 몹시 짠했나 보다. 평소 주변 어른들 모두 붙임성 있고 말 잘 듣고 수월한 아이라 야단칠 일도,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다며 예뻐하기에 나름 잘 자라고 있다 위안하고 지냈는데…. 제 집에서도 눈치 보며 주눅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짚어 보며 가슴이 철렁했었다.


중학교 1학년인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우리아들 어디가면 다른 사람 눈치부터 살핀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않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으면 꼬리부터 퍼뜩 내리고 본다. 이걸 처세술이라고 하던가. 중학교 입학하고 3월 둘째 주, 자긴 이제 상황파악을 마쳤다고 하더니 선배건 친구건 무조건 여자들한테만 잘 보이면 별 문제 없이 3년을 살 수 있을 거 같단다. 요즘 말로 ‘헐~’,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하지만 치맛바람은커녕 학교에 옷깃 한 번 들썩여 보지 못한 엄마를 가진 아이치곤 지금까지 학급 회장이랑 전교 회장 부회장을 꾸준히 하고 있는 걸 보면 생존전략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눈치를 보는 나의 성격 탓인지, 함께 일할 연구원을 뽑는다거나 학생을 뽑을 때도 너무 거침없는 성격 보다는 조금 눈치도 볼 줄 알고, 기왕이면 말하기 전에 눈치껏 알아서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그런데 요즘 그런 사람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 둘 밖에 낳지 않는 핵가족 사회에서 오냐 오냐 해서 키운 탓이라고 통탄하기도 한다.


얼마 전 기차 안에서다. 떠들고 소리 지르는 아이에게 엄마는 “기차에서 떠들면 안 돼. 조용히 해야지”라며 아주 큰 소리로 한 번씩 보란 듯, 들으란 듯 성의 표시를 한다. 그러곤 계속해서 높은 톤, 명랑한 소리로 신나는 노래에 구연동화까지, 아이는 한껏 신이 났다. 이런 ‘무 개념 엄마’ ‘진상 엄마’들에게 ‘지적 질’ 했다가 애 기죽이고 눈치 보게 만든다며 ‘봉변’ 당한 얘기는 뭐 워낙 흔한 주제여서 ‘선생님의 본능’을 지그시 누르고 아직 엄마조차 눈치와 배려를 구분할 나이가 되지 않아 저러려니 애써 태연한 척 해 본다. 그런데, 종착역인 서울역까지 함께한 이 아이가 이번엔 차도로 확 뛰어든다. 그제 서야 엄마는 기겁하며 제대로 야단을 친다. 새삼 남을 배려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규칙과 원칙을 눈치껏 지킬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은 어쩌면 ‘내 아이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서도 꼭 해주어야 했던 것이구나’ 깨닫게 한다.


정말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서 사회에 내보내려면 마냥 오냐오냐 하는 ‘친절한 교수’ 보다는 적당히 눈치도 주는 ‘엄격한 교수’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연륜 부족의 나한테는 그게 참 쉽지 않을 것 같다. 학생시절, 배고프실 때 좀 예민해 지시는 교수님이 계셨다. 우린 점심시간 전이나 오후 늦은 시간에는 웬만해선 절대 그 교수님과 마주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꼭 말씀드릴 일이 있으면 주로 멋모르는 신입생들을 보내곤 했다. 몸과 마음으로 얻은 경험에 대한 학습효과는 실로 놀라워서 그 아이들도 두 번 같은 일을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눈치가 세습되나보다.


우리 아이들이 나한테 이럴까봐 그게 싫다. 스무 살 넘어 이제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보면 철없는 아이들이다. 취업하면 자연스레 보게 될 눈치를 나한테까지 보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도 모르게, 내 아이들 앞에서 내가 바로 그 ‘무 개념 진상엄마’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권위에 대한 쓸데없는 눈치가 아닌, ‘품위 있는 눈치’다. 품위 있는 눈치는 남의 마음을 생각하고 읽을 수 있는 진정성과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다. 그저 눈치만 보다가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결정 장애자’가 되거나, 제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눈치만 살피는 ‘소심쟁이’에 줏대 없는 ‘기회주의 박쥐’ 취급 받기 딱 좋다. 진정한 눈치 100단 고수라면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소신을 발휘할 때를 재빨리 눈치 챌 수 있는 내공이 있어야 할 듯하다.


어쩌면 교육계는 지금이 그 어느 때 보다 품위 있는 눈치가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말한 그 소년처럼 남과 다른 이야기를 소신껏 하되, 임금님의 입장도 좀 살펴 눈치껏 소신을 펼치는 요령이 필요할 것 같다. 백년지대계라고 하는 교육정책이 매 4년 마다 획획 바뀌려 할 때 바꿀 건 바꾸더라도 지킬 건 지킬 수 있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눈치 채고 보듬을 수 있는 그런 눈치 빠른 교육계 지도자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