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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로부터의 해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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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로부터의 해방의 역사
  • 세종포스트
  • 승인 2014.09.1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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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관용의 역사’

이교도 사상이 부활한 시기 ‘르네상스’
기독교 도그마의 독선 허무는 무기 돼
끊임없이 회의하는 에라스무스가 주역


지난달 한국을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주 입에 올렸던 단어 중 하나가 ‘관용’이다.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는 교황의 메시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겠는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발생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의무와 권리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만약 의무에 가깝다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인권 개념과 직결될 것이고, 권리와 더 닮았다면 타인에 대한 이해 여부가 나의 인격에 달렸다는(일종의 호의에 속하는) 결론이 가능해질 것이다.


관용이란 말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의 상황을 보면 관용의 의미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파악할 수 있다. 서양 역사에서 관용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16세기 무렵이다. 프랑스에서는 종교전쟁이 시작된 1562년 ‘관용’과 ‘양심의 자유’란 어휘가 유행했고, 독일에서는 1618년에 시작된 30년 전쟁 중 관용이란 말이 등장했다. 여기서 공통분모로 종교라는 단어가 발견된다. 개인이 어떤 종교를 믿고 어떤 사상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군주가 베푼 ‘허락’또는 ‘용인’이 당시 관용의 의미에 가장 근접한 것이었다.


김응종 충남대 사학과 교수가 쓴 ‘관용의 역사’는 이 관용이라는 관점에서 서양 근대 역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강자가 베푸는 은혜에 가까웠던 관용의 의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모든 이들이 갖춰야 할 의무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인지,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 시대에 걸쳐 살피고 있다. 이 시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저자가 관용의 역사를 ‘그리스도교로부터의 해방의 역사’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중세를 지배했던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불관용’이라 지적한다. 유럽이 그리스도교의 지배에서 벗어나 세속사회로 들어서기 시작한 근대, 구체적으로는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 시대에 온갖 종류의 관용이 앞 다퉈 피어나고 뒤섞이고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관용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중세를 떠나야 했다. 〔…〕 르네상스는 이교도들의 사상이 부활한 시기다. 고대 철학자들의 자연철학, 회의주의 철학, 에피쿠로스의 철학 등은 근대의 관용론자들이 그리스도교 도그마의 독단과 독선을 허무는 무기가 되었다.”


새로 쓰인 관용의 역사에서는 주연과 조연이 뒤바뀐다. 종교개혁 시기 역사가 내세우는 주인공은 마틴 루터지만 관용의 역사에서 주인공은 에라스무스다. 루터는 중세 1000년을 지배한 가톨릭교회의 독점을 파괴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그로부터 시작된 프로테스탄트교회 역시 불관용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루터는 양심이라는 새로운 신앙의 기준을 제시했으나 자신의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타인의 양심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반면 에라스무스는 하나의 주장을 고수하기보다 끊임없이 회의하는 자였다. 초대 교회의 근본 교리를 제외한 나머지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에라스무스의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루터의 주장은 종교전쟁이라는 참극을 불러 왔지만 에라스무스의 사상은 근대 인권 사상의 초석으로 사용됐다.


“오늘날, 법이나 제도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없다. 이제 남은 일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상생활에서 관용을 실천하는 것이다. 〔…〕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이 만드는 조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 관용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희생자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한국일보 제공 = 황수현 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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