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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딸막하고 거대한 솔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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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딸막하고 거대한 솔방울”
  • 황수현 기자
  • 승인 2014.08.18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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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앙코르와트’

식민지 인도차이나 100년 앙코르유적 재발견에 얽힌
프랑스의 고고학적 공헌·유물 반출 정치적 내막 추적


오늘날 앙코르 유적의 가치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동서로 1500m, 남북으로 1300m에 이르는 외벽을 갖춘 앙코르와트와 200개의 거대한 얼굴들이 탑을 이룬 바이욘 사원의 위용 앞에서 취향을 논할 이는 과연 누구인가.


그러나 앙코르 유적을 처음 본 유럽인들의 반응은 지금과 달랐다. 1901년 앙코르 유적지를 방문한 프랑스의 소설가 피에르 로티는 바이욘 사원의 탑을 “땅딸막하고 거대한 솔방울”에 비유했고 그 유명한 사면탑의 존안이 머금은 미소를 “중국 괴물의 대담한 웃음보다도 불안을 준다”고 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폐허에 묻혀 있던 앙코르의 유물은 당시 유럽이 가진 미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으며, 당대 미술사 연구의 핵이었던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미술과도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이 이질적인 유물들이 재발견돼 전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무엇일까. 누가 가장 먼저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어떤 경로로 그것을 반출해 만국박람회에 선보였을까. 그는 대체 어떤 구실을 대고 이 귀중한 유적들을 빼돌렸으며 당시 그의 속내는 예술에 대한 열망에 가까웠을까, 식민주의자의 오만에 기울었을까.


일본의 미술사학자 후지하라 사다오의 <앙코르와트>는 이 질문들에 대한 길고 치열한 답변이다. 책은 1887년부터 20세기 중반,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 지배했던 약 100년의 기간 동안 앙코르 유적이 재발견되고 유럽 대륙으로 이동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까지 일어난 일들을 추적한다.


저자의 폭넓은 시각은 책이 단순히 고고학이나 미술사학 책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한다. “여태까지의 앙코르 유적의 고고학사는, 프랑스가 행한 고고학적 조사의 학술적 공헌과 식민주의 시대의 정치적 부채의 유산이 몇 겹이고 겹치고 교차하면서 구성되어 왔다. 이 책은 바로 그 교차의 실상을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다.”


책에는 귀중한 크메르의 미술품을 복제판화 몇 점과 바꿔 프랑스로 반출하는 군인과 ‘보호자’로서 식민지 유물 유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학자들, 귀중한 문화유산을 복제품으로 제작해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공분이 일어날만한 상황에서 저자가 견지하는 ‘학자로서의 온도’는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그는 앙코르 유적 연구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점들을 단순 비난하는 것을 경계하며 근대 고고학사의 왜곡된 모습 안에서 이를 이해하고 아시아 고고학의 미래를 바꿔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2009년 제31회 산토리학예상과 제26회 시부사와-클로델상을 수상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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