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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권리지수’ 세계 최하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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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권리지수’ 세계 최하위, 왜?
  • 강수돌(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4.06.09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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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사회 | 노동인권 후진국, 대한민국
계 139개국 노동조합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지난 달 19일 회원국의 ‘노동자 권리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국제기준 최하위인 5등급으로 분류됐다. 사진은 ITUC 보고서 표지. ⓒITUC
계 139개국 노동조합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지난 달 19일 회원국의 ‘노동자 권리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국제기준 최하위인 5등급으로 분류됐다. 사진은 ITUC 보고서 표지. ⓒITUC

국제노조 "한국은 5등급", 캄보디아와 같은 수준

헌법 명시된 노동권, 실제로 지켜지지 않아 문제

유럽 노동인권 선진국, 오랜 경험과 교육의 산물

강수돌 교수
강수돌 교수

한국의 ‘노동자 권리지수’가 국제기준 최하위 등급인 5등급으로 분류됐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을 포함해 세계 161개의 노조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세계 139개국의 ‘노동자 권리지수’를 계산해 지난 5월 19일 발표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1등급이 최상, 5등급이 최하다. 5등급 밑에 소말리아나 시리아 등 5+등급에 속하는 8개국이 더 있지만, 5+등급은 통상 전쟁 등 비상 상황으로 법치주의가 무너진 나라에만 적용된다. 그래서 노동권에서 5등급과 5+등급의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오십보백보’인 셈이다. 겉으로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할 수 있도록 급성장하는 동안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 경제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의 세계가 최하위 바닥을 쳐왔던 것이다. 불행히도 이것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러면 한국과 동일하게 5등급으로 분류된 나라는 어떤 나라들인가?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인도, 나이지리아, 라오스, 잠비아, 짐바브웨, 중국 등 23개국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노동자 권리에 대한 보장이 없는 나라’다. 노동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가 보호되지 못한다.

그러면 이들 나라의 실제 노동인권 상황은 어떤가? 일례로 방글라데시에서는 작년에 열악한 조건의 의류공장 화재 사고로 인해 무려 1000여 명의 노동자가 전쟁과 비슷한 떼죽음을 당했다. 또 올해 1월 캄보디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시위를 하던 봉제 공장 노동자들을 상대로 경찰이 유혈 진압을 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현지 한국 기업도 무관하지 않았다.

중국 폭스콘 공장(미국 애플사의 아이폰 부품 생산)에서도 2010년 이후 16명의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거하며 자살했다. ‘노동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다시 질문을 던진다. 과연 한국의 노동 상황도 이 정도인가? 물론,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봉제노동자 전태일이 분신 항거를 했던 당시 상황과는 많이 달라지고 좋아진 면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 비해 1인당 국민소득이 약 100배나 상승한 객관적 상황에 근거할 때, 그리고 최근에 전개되는 상황들을 보면 5등급에 분류될 만도 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엄연히 우리 헌법은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 노동법도 구체적으로 노동자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의 경우만 해도 정부는 공무원 노조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2005년에 창립되고 2007년에 서울고법에서 합법 판결까지 받은 이주노동자 노조도 아직 대법원 계류 중이라며 정식 인정을 않고 있다.

2013년 연말에 ‘민영화 반대’를 내세우며 파업을 벌인 철도노조는 핵심 간부 구속, 대량 해고와 더불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진행된다. 가압류와 손해배상은 이제 노조 탄압의 감초 격이다. 산업재해로 해마다 2000 명 이상이 죽어간다. 해마다 5만 명 이상이 산재 부상을 당한다. 산재 인정도 못 받는 이가 더 많다.

게다가 ‘초일류 기업’을 자칭하는 삼성의 경우, 노동조합 활동을 마치 범죄 행위처럼 취급하지 않던가? 오죽 힘들었으면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하던 기사들이 노조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탄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을까? 그 시신마저 경찰이 탈취해가는 세상이 바로 이 대한민국이다. 현대자동차는 어떤가? 노동부로부터는 물론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불법도급’ 판정을 받은 비정규직 고용관계를 인정하고 바로 정규직화하기는커녕 신규 채용이라는 이름 아래 노조 활동가들을 추려 내고 있다. 쌍용차는 어떤가? 2009년 구조조정 사태 이후 25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귀한 목숨을 잃은 상태에서, 고등법원은 사후적이나마 "당시 정리해고는 정당성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행이긴 하지만, 사람들 다 죽인 뒤에 다시 일어서라는 꼴이다. 그것도, 회사는 진지하게 생각지 않는다. 대법원에 상고해 시간만 끈다. 노동자들이 제풀에 지쳐 쓰러지기만 기다린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어떠한가? 성차별은 여전하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법적 규정이 개선되었지만 ‘회사 눈치’ 때문에 별로 써먹지도 못한다. 마치 2012년 대선 국면에서 ‘경제민주화’가 일종의 유권자 낚아채기용 미끼로 사용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노동법 또한 노동자 낚아채기용 또는 국제적 비난 무마용 미끼일 뿐이다.

이번 국제노총의 노동자 권리지수 보고는 2013년 4월부터 2014년 3월까지 무려 1년 동안에 걸쳐, 단결권·단체교섭권 등 97개 평가 항목을 꼼꼼하게 체크한 결과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다. 즉, 법이나 제도의 이면에 놓인 현실 그 자체를 정직하게 드러낸 셈이다. 그렇다. 이런 진실을 많이 드러내야 한다. 사실 최근 3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태도 결국은 거짓이 거짓을 낳고 조작이 조작을 낳는 잘못된 사회구조와 풍토가 근본 문제 아니던가?

그러면 국제노총의 보고에서 1등급으로 분류된 나라, 우리가 본받음직한 나라들은 어디인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 18개국이었다. 이들 나라는 노동법이 노동법답게 지켜지는 나라들이다. 일종의 노동경찰인 근로감독관이 실질적 힘을 갖고 있으며, 이들조차 부정부패하면 즉각 파면을 당한다. 노동법이건 일반 상법이건 법을 어기는 기업들은 처벌을 달게 받는다. 법을 하나 만들기 위해 오랜 토론을 거치지만, 일단 만들어지면 예외 없이 집행된다. 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물론 최근의 신자유주의 경쟁의 격화로 이들 나라의 노동권도 과거에 비해 조금씩 퇴행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 같은 상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이들 노동선진국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한마디로, 역사적, 사회적 과정의 산물이다. 수백 년에 걸친 노동운동의 전통과 노동권에 대한 고양된 의식, 그리고 가정이나 학교에서부터 노동을 바라보는 올바른 가치관 교육이 이뤄진 결과이다. 또 하나, 이들 나라들은 노동조합 조직률(특히 북유럽의 경우 50∼80% 사이를 오간다)이 상대적으로 높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나 시민들이 학습동아리, NGO, 지역개발그룹 등 풀뿌리 조직들에 회원으로 가입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 풀뿌리의 힘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발전과 노동인권이 수레의 양대 바퀴처럼 같이 굴러가야 한다. 정치가나 행정가들, 경제인들의 관점과 의식도 바뀌어야 하고 법과 제도도 좀 더 철저히 노동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풀뿌리 자신도 더욱 열심히 노동인권을 공부하고 토론하며 잘못된 현실을 고치기 위해 손잡고 나서야 한다. 실천 없는 공부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며, 공부 없는 실천은 자가당착에 이르기 쉽다. 노동인권 선진국, 결코 공짜로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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