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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을 맘껏 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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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을 맘껏 누리라
  • 정은영(미술사학 박사)
  • 승인 2014.04.15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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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산책 | 마티스가 전하는 봄의 전언
정은영(미술사학 박사)
정은영(미술사학 박사)

‘생의 기쁨’,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 걸작

환희의 궁극적 표현, 5년 후 ‘춤’으로 탄생

평균 기온을 웃도는 따뜻한 날씨 덕에 올해는 봄꽃들이 예년보다 일찍 개화했다. 때 이른 손님이지만 추운 겨울 뒤에 오는 봄에 대해서만은 일찍 찾아왔다고 불평하는 이가 없다. 깊은 산자락이며 도심의 공원이며 꽃피는 봄을 맞이하는 행복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밤사이 개화한 매화, 목련, 벚꽃이 대여섯 날이 멀다하고 후드득 떨어져 내리지만 그래도 봄은 역시 봄이다. 지는 꽃에 마음이 허허롭다는 사람들도 이 계절만은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하며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시인이 된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지만 봄이 올 때마다 거듭 드는 생각이 있다. 봄이야말로 생의 기쁨을 만끽하라고 우리에게 허락한 신의 은총이자 자연의 축복이라는 것. 이 계절엔 색채와 향기의 향연이 지척에서 벌어져 우리의 온 감각이 호강을 한다. 연하고 부드러운 연둣빛에서 화려하고 농염한 진홍빛까지, 싱그러운 풀내음에서 매혹적인 꽃향기까지 색과 향을 맘껏 누리니 말이다.

 1. ‘생의 기쁨’ 앙리 마티스, 1905년, 캔버스에 유채, 175×241㎝. ⓒ필라델피아 반즈 파운데이션
1. ‘생의 기쁨’ 앙리 마티스, 1905년, 캔버스에 유채, 175×241㎝. ⓒ필라델피아 반즈 파운데이션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생의 기쁨(Le Bonheur de Vivre)>(1905)은 그렇게 삶을 만끽하는 이들의 모습을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천진스럽게 그려 놓았다(그림1). 어린 아이가 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형태도 삐뚜름하고 색채마저 서툴러 보여서, 언뜻 보면 도무지 ‘잘 그린 그림’ 같지가 않다. 하지만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던 그의 신념을 이 그림만큼 잘 보여주는 작품도 없다. 마치 아이의 눈으로 본 듯한 세계의 생생함을 거리낌 없이 화폭에 옮겨놓을 수 있는 자, ‘대가(master)’란 바로 그런 존재로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2.‘춤’ 앙리 마티스, 1910년. 캔버스에 유채. 260×391㎝. ⓒ국립 에르미타지 미술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2.‘춤’ 앙리 마티스, 1910년. 캔버스에 유채. 260×391㎝. ⓒ국립 에르미타지 미술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화면의 중앙을 차지한 눈부신 노랑 주위로 강렬한 빨강과 주황, 청록과 남보라가 진동하며 퍼져 있다. 저 멀리 핑크빛 하늘과 노란 땅 끝이 만나는 지점에는 한 조각 푸른 바다가 아득히 먼 수평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 수평선은 가까이에 있는 수직의 청록나무나 보드랍게 깔린 푸르른 잔디와 강한 대조를 이루며 평면적인 화면에 급격한 원근(遠近)의 깊이를 만들어놓고 있다. 사실적인 묘사나 전통적인 기법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색과 면과 선만으로, 다시 말해 회화의 기본적인 조형 요소만으로 온전히 생의 약동과 삶의 기쁨이 넘치는 화면을 구성해 놓았다. 흔히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마티스이지만 이 그림을 보면 ‘선의 마법사’요 ‘공간의 연금술사’로 불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싶다.

무엇보다도 눈을 사로잡는 것은 생의 기쁨을 만끽하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여기 저기 흩어져 한가로이 노니는 이들이 유일하게 열심을 다하여 몰두하고 있는 일은 사랑을 나누고 우정을 키우는 일, 자연을 즐기고 꽃을 탐미하는 일,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일이다. 특히 화면 중앙의 저 멀리 위치한 군무(群舞)는 가히 핵심 부분이라 할 만하다. 환희의 궁극적인 표현은 결국 온몸으로 기쁨을 구현하는 흥겨운 춤이 아니던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날아갈 듯 춤을 추는 이 모습은 몇 년 후 거대한 크기의 <춤>으로 제작되었고(그림 2), 이후에도 마티스의 작품에 지속적인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어쩌면 마티스의 <생의 기쁨>은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꿈속의 낙원을 그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찾아온 때 이른 봄 풍경도 이와 그리 다를 바 없다. 봄꽃이 만발한 이 계절엔 온 세계가 색채의 마술을 부리고 향기의 요술을 부리니, 봄을 맞은 우리는 마땅히 ‘생의 기쁨’을 만끽할 일이다. 생(生)의 기쁨을 누리라. 봄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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