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르포] 고도(古都)의 두 얼굴 ‘시안’을 가다
상태바
[르포] 고도(古都)의 두 얼굴 ‘시안’을 가다
  • 김재중 기자
  • 승인 2015.05.29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레스 걸친 ‘양귀비’ 너무도 이중적인…
시안시 중심부 종루일대
중국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으로 불리는 화산(華山).
중국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으로 불리는 화산(華山).

중국의 고도(古都) 시안(西安)이 깨어나고 있다.

시안은 서양사에서 ‘로마’가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중요한 도시다. 로마제국 패망 이후 서양이 중세시대 기나긴 암흑으로 빠져들었다면, 중국은 저 유명한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의 기독교, 인도의 불교, 아랍권의 이슬람 문명까지 빨아들이며 세계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고대 로마가 그랬고 현재 뉴욕이 그렇듯, 중세 가장 진화된 기술과 정보, 문화, 종교, 그리고 돈과 권력까지 모든 문명은 시안의 옛 지명 ‘장안(長安)’으로 흘러들었다. 문명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당나라 특유의 개방성 때문이었다.

당나라 전성기, 장안의 인구는 100만 명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으로 치면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부재 때문이었을까. 이 같은 인구밀집이 도시쇄락의 이유가 됐다. 장안 주변의 관중평야로는 식량자족이 어려운데다 전염병도 창궐해 빈민층 불만이 커졌다는 것이다. 10세기 초 도읍이 뤄양(洛陽)으로 옮겨가면서 장안은 세계 중심도시의 지위를 잃고 중국 명·청 왕조의 지방도시로 전락하고 만다.

케이블카가 닿지 않는 정상부, 짐꾼의 하루는 길다.
케이블카가 닿지 않는 정상부, 짐꾼의 하루는 길다.


진시황과 병마용의 도시

병마용은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병마용은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인 병마용 모습
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인 병마용 모습

시안이 다시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4년부터다. 시안시 외곽 린퉁구에 사는 한 농민이 우물을 파다 고대 왕조의 군인으로 보이는 토기인형 더미를 발견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병마용’이 그렇게 무려 2000년 이상을 땅속에 잠들어 있다 깨어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진시황제가 인부 70만 명을 동원해 기원전 246년부터 무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구체적 장소는 물론 부장물과 그 규모를 알 수 없었던 진시황릉은 ‘호위무사’인 병마용을 시작으로 서서히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00년까지 7개 갱도가 발굴됐지만 아직 땅속에 묻혀 있는 양이 발굴된 양보다 수백 배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릉 조성에 동원됐던 인부들은 무덤의 비밀이 새어 나갈 것을 두려워 한 황제의 명령에 의해 모두 순장됐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길 없으나 이름도 없이 땅속에 파묻힌 그들이 2200여 년 뒤 후손들의 먹거리를 책임진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시안은 ‘진시황릉과 병마용’의 도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유물을 관람하기 위해 세계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13억 중국인들의 방문도 잦다. 병마용 관람객으로부터 벌어들이는 관람료 수입만 하루 18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시안에 머물면서 쓰는 지출이 도시경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라는 이야기다.


중국 내륙경제의 관문

당나라 무용 탕러궁(唐樂宮)쇼.
당나라 무용 탕러궁(唐樂宮)쇼.
‘비석의 숲’ 비림(碑林).
‘비석의 숲’ 비림(碑林).

그렇다고 시안이 관광에만 의존하는 소비도시는 아니다. 중국 6대 거점도시 중 한 곳으로 중앙정부가 외국 투자기업 유치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비근한 예로 삼성전자가 지난 2012년 75억 달러를 투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시험생산 단계에 들어갔으며 최근 삼성SDI도 약 6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중국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인 시안을 공략하지 않고서는 향후 대중국 사업의 향배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뿐만이 아니다. 미국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일본의 NTT도코모 등 글로벌 기업들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경쟁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현지 지사를 세우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고향인 시안은 대표적 교육도시로, 유명 이공계 대학과 국가출연 연구소가 많아 IT 등 전문 인력이 많다"며 "향후 차세대 네트워크, 클라우드 컴퓨팅, 소프트웨어와 집적회로 등 IT 분야를 선도하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맨 얼굴이 가장 매력적이건만

성벽 너머 굴뚝과 매연.
성벽 너머 굴뚝과 매연.

15년 전 배낭하나 짊어지고 인천항에서 중국 텐진으로, 텐진에서 베이징으로, 베이징에서 시안으로 일주일이나 걸려 도착했던 그 ‘시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길이 14㎞ 명나라 성벽 안에만 존재하던 고도(古都) 시안은 주변 신도시에 파묻힌 작은 점에 불과했다.

도시 중심부인 종루(鐘樓)며 비림(碑林) 등 유적지 주변에 빼곡히 늘어서 있던 인력거꾼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그 이유가 매우 아이러니하다. 처음 인력거꾼들은 돈벌이가 나은 지하철 공사장에 가서 돈을 벌고 돌아올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지하철이 개통되니 인력거를 타는 관광객이 부쩍 줄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 표현해야 할까.

시안에서 동쪽으로 120㎞쯤 떨어져 있는 화산(華山)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2000m가 넘는 바위산을 오르내리며 짐을 나르던 짐꾼들이 케이블카 건설에 동원돼 일을 했는데, 결국 그 케이블카가 일자리를 뺏어버리게 된다. 자기 무덤이 될 줄 모르고 열심히 황제의 무덤을 팠던 2000여 년 전 진나라 노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 담긴 화청지(池). 이곳을 굽어보는 여산에도 케이블카가 놓였다. 비포장도로를 달려 어렵사리 구경하던 ‘병마용’까지 반듯한 아스팔트 도로가 깔렸다. 주변엔 현대식 공원이 조성됐다. 그 공원엔 수백 개 기념품 가게가 늘어섰다.

양귀비가 서양의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랄까. 맨 얼굴 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고도는 온데간데없고 네온사인과 자동차 행렬이 온 도시를 감싸고 있다. 사진 속 ‘명나라 성벽’은 희뿌연 스모그 때문에 그 윤곽을 잃어버렸다. 여행자는 늘 꿈을 꾼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언가를 만나고 싶다고. 그리고 지탄을 받는다. 배부른(?) 여행자의 욕심일 뿐이라고. 그래서 여행은 ‘두 얼굴의 고도, 시안’ 만큼이나 이중적이다.

글.사진 김재중 기자 jjkim@sjpost.co.kr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