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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로 밀어내면서 국민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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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로 밀어내면서 국민행복?
  • 강수돌(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4.07.22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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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기업이 99% 부 독식, 양극화 심화
"일류학교 가야 성공" 강자 동일시 팽배
‘풀뿌리 철혈정치’ 없이 근본 해결 곤란


기업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시이오(CEO)스코어’에 따르면, 2012년 삼성과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국내법인 전체 영업이익(국세청 기준)의 22.4%를 차지했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양대 그룹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갈수록 심화되는 셈이다. 이 두 그룹 계열사의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비중은 2013년 9월 말 기준으로도 무려 36.5%다. 대한민국 경제가 갈수록 1%의 대기업이 99%의 부를 독식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하다못해 면세점 시장조차 거의 완벽한 독점 구조다. 2013년 10월, 홍종학 의원이 관세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롯데와 신라 두 기업이 2012년 현재 전체 면세점 시장 매출액의 81.4%를 차지하고 있었다. 국내 면세점 시장은 2008년 3조 원에서 2012년 6조 원으로 100% 급성장했는데, 그 성장을 이끈 것은 신라와 롯데 두 재벌이었다.

물론, 삼성과 현대차, 롯데와 신라 등 재벌의 급성장 자체엔 자신의 노력도 있었다. 각 기업들은 ‘생사를 걸고’ 품질 향상과 효율 향상, 고객 확보와 수익 증진에 최선을 다한다. 또, 지위의 상하를 가리지 않고 ‘밤낮 없이’ 열심히 일을 해야만 잘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쏠림’ 현상, 즉 승자독점 내지 재벌독식 구조는 나라 전체적으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벌 또는 수출 지향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로 인한 사회경제 양극화다. 양극화가 되어도 비난을 피하려면 ‘트리클다운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즉 윗물이 넘치면 아래로 퍼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우리의 경험은 ‘아랫물이 위로 뽑혀 올라갈 뿐’이라는 ‘펌핑 업 효과’를 확인케 한다. 결국 농민,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여성, 노인, 청(소)년, 장애우, 저학력자, 저기술자, 이주노동자 등의 희생을 담보로 재벌 또는 대기업과 그 직원들만 배를 불리는 것으로 고착화했다. 동시에 이는 극소수 재벌들이 위기에 빠지면 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문제점이 재벌들의 비리나 모순을 온존시키는 효과를 낳는지 모른다. 악순환이다.

둘째, ‘강자 동일시’ 심리가 온 사회를 휘감는다.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승자 그룹에 들기 위해 너도 나도 분발한다. 이미 승자인 사람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또 중간층이나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은 상류층이 누리는 기득권을 동경하고 선망하며 자신 또는 자식이라도 그 속으로 들어가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이런 식으로 온 사회는 ‘강자 동일시’ 심리에 지배된다. 이제 대부분 사회적 관계는 ‘강자나 약자냐’를 둘러싸고 편협하게 재편된다. ‘시선의 폭력’이 사람을 압도한다. 지난 50년 동안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고교나 대학을 가도 ‘일류’ 학교를 가야 성공을 했다고 본다. 취업을 해도 대기업이나 고급 공무원이 되어야 성공이다. 새로 사람을 만날 때 ‘명함’을 내밀면서 자신의 높은 지위를 자랑하고 인정받아야 인생 성공이 된다. 청년들이 공부를 해도 얼마나 자기 꿈에 걸맞은가, 나중에 일을 하더라도 얼마나 사회 헌신을 하는가 하는 잣대는 거의 없다. 오직 강자 그룹, 기득권 그룹에 들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인생을 이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사회 전체의 인간관계가 점차 황폐화한다.

셋째, 사회경제 양극화와 맞물려 생기는 또 다른 문제가 ‘사기 저하’ 현상이다. 마침내 사람들은 발버둥을 치며 노력을 해봤자 결국 극소수만이 성공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 직후에 느끼는 감정은 한편으로는 분노와 증오, 다른 편으로는 슬픔과 좌절이다. 이제 뭔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간다는 주체적 의지와 의욕이 상실된다. 무기력과 절망감이 사회를 휩쓴다. 권력을 잡은 정치가들은 온 국민을 상대로 ‘군기 잡기’에 나선다. 그러나 과연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열정적으로 뭔가 하려고 나서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두려움에 기초한 행위는 자발성에 기초한 행위에 비해 지속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나라 망할 징조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국가나 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 사회’일 것이다. 그간 수출대기업에 치중했던 환율정책이나 세제혜택 등을 버리고, 중견·중소기업들이 골고루 성장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특히 ‘갑을관계’, 즉 공업이 농업의 희생을 딛고, 또 대기업이 하청·협력업체 등의 희생을 딛고 성장하는 약탈적 경제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나 빈곤층도, 또한 일중독에 빠져 쉴 줄 모르는 성취자들도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복지 사회다. 그러나 현 정부가 이런 일을 할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나오는 결론이 풀뿌리 시민 사회의 활성화다. 우리가 아는 복지국가인 스웨덴조차 단순히 정당정치 차원에서의 변화만이 아니라 무수한 풀뿌리의 변화와 적극적 활동을 기반으로 해서 구축되었다. 일례로, 인구 900만에 불과한 스웨덴에는 4000여 개의 지역개발그룹, 15만 개의 비영리단체들, 약 30만 개의 학습 서클이 마을마다 지역마다 돌아간다. 이러한 사정은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여러 나라들은 물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스위스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월 300만원을 무조건 주는 ‘기본소득제’를 위해 국민투표가 예정되어 있다. 중요한 점은 무려 13~14만 명이 서명 운동에 동참하여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주도한다는 점이다.

눈을 돌려 아시아나 남미로 가보자. 아시아의 작은 나라 부탄은 1972년부터 ‘국민총행복’을 국정지표로 삼아 나라를 이끌고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강자 동일시’ 심리가 없다. 그저 자연을 닮아 단순하고 소박하게 산다. 당연히 행복도가 높다. 남미의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코스타리카 등 여러 나라들도 (대기업만 살찌우는) 자유무역협정 대신 ‘민중무역협정’으로 상부상조하거나 가난한 이들도 교육이나 의료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코스타리카는 군대 없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군대가 없다는 것은 국가 폭력이 없고 국민들이 그만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산다는 뜻이다.

이제 방향은 좀 보인다. 옆 사람을 팔꿈치로 밀치면서 자기만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팔꿈치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행복한 길을 추구하는 ‘어깨동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조상들도 두레와 품앗이, 이웃사촌이라는 좋은 문화를 갖고 있지 않았던가? 최후의 결정적인 문제는 철학과 혈기이지 재원이나 여건이 아니다. 세상을 제대로 바꾸려는 철학과 혈기, 즉 풀뿌리의 ‘철혈정치’가 절실한 시점이다.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국민행복시대’는 헛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국민행복시대’는 헛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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