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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눈으로 예수를 맞이하다
  • 이순구(화가)
  • 승인 2013.12.1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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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산책 | 카라바조의 ‘목자들의 경배’
‘목자들의 경배(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 카라바조, 1609, Oil on canvas, 314×211㎝, Museo Regionale, Messina, Italy

모든 시대는 보수와 혁신이 대립각을 세운다. 특히 미술 분야에서 시대마다 사조가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수가 없으면 혁신이란 없다. 보수와 혁신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따라서 보수는 혁신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연꽃처럼 진흙수렁에서 핀 꽃은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혁신은 시대의 꽃이다.

12월! 이 시기에 떠오르는 작품은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의 <목자들의 경배>다.

후대에 쓴 그의 전기를 보면 카라바조는 감성이 풍부했던 것 같다. 많은 사건과 사고를 일으킨 편력들을 볼 때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만큼의 솔직한 감정표현이 넘친 사건들이 많다. 그러나 그의 미술에 대한 집념과 천재성은 후세에 새로운 혁신으로 남아있다. 그가 주로 사용한 명암법에 대해 미술평론가인 로베르 롱기는 르네상스시기에 발견된 원근법의 중요성에 비유할 정도다.

<목자들의 경배>는 중세의 많은 화가들이 남긴 것과 같이 아기예수의 탄생과 이를 경배하는 목자들을 그린 것이다. 베들레헴의 외진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와 성모, 이를 경배하러 찾아온 목자들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당시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 성모자(聖母子)와 목자들의 표정을 그렸다.

너무 낡은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예수와 모진 산고로 탈진한 듯 비스듬히 기댄 마리아는 살포시 아기를 끌어안고 볼에 뺨을 댄다. 힘에 부친 듯 숙인 마리아의 표정과 손동작에서 산고를 느낄 수 있다. 초라한 곳이지만 성스럽다. 또한 이를 경배하는 목자들에게서 조차 왕중왕을 경배하러온 화려한 아기예수탄생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초라한 모습이다. 화면 중앙에 배치된 마리아와 요셉의 붉은색 옷을 빼고는 화려함이 없다는 얘기다.

당시 바로크미술의 화면에는 소용돌이치는 역동적인 구성의 동세와 범람하는 강물처럼 빛이 화면에 흘러넘쳐야 당연했다. 아기예수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금빛구름과 사랑스런 아기천사들의 무리가 감싸고 선물을 싸들고 오는 행렬이 그 당시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아무것도 없다. 달빛에 드러난 성가족과 목자 세 명의 모습을 보라. 이탈리아 바로크미술을 통틀어 이처럼 어둡고 쓸쓸한 그림이 어디에 있나. 카라바조는 왜 성스러운 순간을 이토록 쓸쓸히 그린 것일까.

이 그림의 의도는 중앙에 있다.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상봉, 서로 뺨을 맞댄 바로 그 순간이다. 서로의 뺨을 맞대는 것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죽은 사람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뻣뻣하게 굳은 라자로를 끌어안고 뺨을 부비는 막달레나, 또는 피에타의 마리아가 무릎위에다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뺨을 맞대는 장면은 종교미술의 역사에서 흔한 상징이다. 아기예수와 뺨을 맞댄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훗날 다가올 수난의 어두운 예감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또한 허름하게 그린 양치기 목자들은 순수한 믿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 표정에서 이들이 바치는 예배의 경건함을 최대로 보여준다. 참된 예배는 오래된 친구의 향기처럼 진실한 마음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예수의 삶에서 기적과 일화를 걷어냈다. 종교라는 이름의 달콤하고 신비스런 환상이 덮고 있던 세속의 꺼풀을 벗고 순박하게 달려온 양치기의 순박한 시선으로 예수의 삶을 증언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이병호 주교의 말씀이 떠오른다. "예수님도 그렇게 가장 쓸모 있는 소모품으로 세상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 화가는 이토록 인간의 죄를 대신한 삶의 시작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탄생한 예수의 탄생 상황을 보탬 없이 더도 덜도 아닌 그대로 그렇게 그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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