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앨런 코헨 교수 |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을 때 위기는 깊어가고 병적 징후가 출현한다." ‘헤게모니’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의 언명이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는 요즘이다.
지난 2008년의 세계적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에 파산 선고를 내렸다. 그런데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이 살 길이요, 뼈를 깎는 구조 조정과 공공 지출 축소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밖에 없다는 기득권층의 일관된 주장이 먹혀드는 게 현실이다. 2011년 자본주의 탐욕에 항거하는 월스트리트 시위에서 출발해 미국 사회를 뒤엎을 것 같았던 ‘점령하라!’ 운동도 73일 만에 경찰에 의해 어이없이 무너졌다.
이 세상이 백 명이 놀러 온 캠핑장이라면 제럴드 앨런 코헨 지음 | 이숲 펴냄 | 1만원 |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인간이 서로 포식자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 마치 ‘잘난 놈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살면 되고,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사회의 공공성은 허물어졌고, 이제 각자 알아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철학 교수였던 제럴드 앨런 코헨(1941~2009)은 죽기 전에 펴낸 마지막 책에서 이런 상황에 도전장을 던진다. ‘사회주의면 어때?(Why not socialism?,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라고. 코헨은 캠핑장에 간 사람들의 사회 활동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비교한 뒤 사회주의가 명백히 더 좋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회주의의 기본 원리를 평등과 공동체 정신으로 보고, 사회주의가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캠핑의 예를 들어 배격한다. 사람들은 캠핑할 때 협동을 통해 평등과 상호 배려라는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기에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인간관계의 본보기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즉 캠핑에서는 자본주의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문제는 사회주의가 인간 본성에 들어맞는지가 아니라 캠핑에서 실현되는 사회주의적 원리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 구현하는 데 있다. 안타깝게도 서로 관대하고 협동적인 캠핑의 원리는 제한된 시간에 각별히 친한 사람끼리 있을 때만 실현될 수 있는 데다 우리는 전 사회적으로 캠핑 원리가 작동되도록 하는 사회적 기술을 아직 모르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덧붙여 사회주의에 저항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힘이 막강해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열패감도 고백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탐욕과 공포가 작동 원리인 시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이 더러운 시대의 요설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인류 역사에서 포식 시대를 끝내려면 사회주의의 기본 원리를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저자에게 사회주의는 돈에 찌들고 병든 세상을 치유할 윤리이기 때문이다. 그 치유법도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배려하며 사는 삶이 ‘좋은 삶’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이 내세웠던 ‘경제 민주화’가 시나브로 논의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경제 민주화란 경쟁과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양극화를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어떻게든 통제해 사회와 경제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가 유언처럼 들려주는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