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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제국을 떠받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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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제국을 떠받치는가?
  • 강수돌(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3.09.23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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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 드라마 ‘황금의 제국’이 보여주는 것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에도 나오는 ‘연금술’이란 게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해 아라비아를 거쳐 중세 유럽으로 퍼진 화학적 기술로, 대개는 납이나 흑연 등 비금속을 이용해 귀금속 또는 황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상징적으로는 불로장생약이나 만병통치약을 만드는 기술까지도 의미한다. 그 뒤 1800년대 초 미국 콜로라도 주의 협곡들에서 금광맥 발견으로 시작된 ‘골드러시’ 현상도 연금술의 연장선에 서 있다. 이제 오늘날 ‘부의 연금술’이라 하면 결국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기술을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돈벼락 로또’처럼 순전한 우연이나 확률 게임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도시 재개발, 아파트 단지 건설, 부동산 투기, 주식 조작이나 파생상품과 같은 금융 투기, 대형 토목사업 등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며 조직적인 돈벌이 사업을 뜻한다.

 황금의 제국 ⓒSBS
황금의 제국 ⓒSBS


올해의 인기 드라마 중 하나인 <황금의 제국> 역시 이러한 현대판 부의 연금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핵심엔 S 그룹이 있다. S 그룹 회장은 시멘트 공장에서 시작해 대규모 기업 집단을 형성했다. 비록 월급은 안 받지만 주식 배당금만 해도 매일 억대를 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백, 수천 명을 고개 숙이게 만들 수 있는" 그 제왕적 힘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근 (논란은 많지만) 선거로 뽑은 대통령조차 회장님들 앞에서 경제 민주화를 사실상 포기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일을 떠올려보면, 과연 제왕적 회장님의 파워가 어떤지 알 수 있다.

<황금의 제국>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러한 힘의 ‘제국’만이 아니다. 그 제국을 지탱하는 다양한 국가 기구와 그 제국의 핵심 가문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사이의 관계가 보여주는 역동성(dynamics)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첫째, ‘황금의 제국’은 검찰, 청와대, 국회의원 등 국가 기구가 없이는 지탱되기 어렵다. 뇌물과 선물이 구분되지 않고 협박과 부탁이 구분되지 않는 세계가 황금의 제국을 떠받친다. "내 손은 안 닿아도 내 돈은 닿는다"는 말처럼 권력자를 매수하는 일은 기본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황금의 제국은 용역 깡패나 총회꾼들, 스파이와 밀고자 등이 없으면 돌아가지 못한다. "설득은 말이 아니라 힘으로 해야 한다"는 말처럼, ‘어둠의 경제’가 황금의 제국 뒷마당에 숨어 있다. 실제로, 우리는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에서 수많은 엘리트들이 부정부패나 탈법 행위로 낙마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남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라"는 선친 회장의 조언과 "돈 벌고 싶으면 땀을 흘리지 말고 다른 사람의 땀을 훔쳐야 한다"는 식의 철칙에 따르다 보니 ‘황금의 제국’에서 윤리와 정의는 거의 없다.

둘째, 제국의 핵심에 자리한 가문 사람들은 과연 행복한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동성과 동진 형제, "고구마 한 번 배부르게 먹어보자"며 시작한 시멘트 회사, 점차 제철, 자동차, 중공업, 전자, 통신, 백화점, 골프장 등 돈 되는 사업이면 주저 없이 빨대를 갖다 댄다. 그렇게 이룬 ‘황금의 제국’, 하지만 정작 꿈을 이룬 황제는 병실에서 고독하게 죽었고, 전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무장한 채 황제 곁으로 잠입한 황후는 ‘그 날’만 기다리며 27년 간 이중인격자로 살며 자신을 억눌렀다. 자녀들과 그 배우자들 또한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직간접으로 가담한다. 웃으며 사랑의 대화를 나눠야 할 아침 식탁은 뼈 있는 말과 질투심, 힘겨루기가 오가는 공간이다. 돈과 권력의 논리는 사랑과 우애의 논리와 전혀 다른 차원임을, 참된 인간 행복에 장애물임을 <황금의 제국>은 잘 보여준다.

셋째, <황금의 제국>은 각 등장인물들이 어느 누구도 일관되게 선하거나 일관되게 악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믿을 만하다가도 배신하고 배신하다가도 인간미를 약간씩 보인다. 기만과 배신의 행위가 주인공의 의지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고 상황의 강제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만 기만과 배신의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검찰이나 경찰, 국회, 정부, 언론과 같은 온갖 사회 제도들도 바르게 가다가도 엉터리로 가고, 엉터리로 가다가도 바른 길로 간다. 이런 점에서 역동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우리는 결론적으로, ‘끝까지’ 믿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현실을 알게 된다. 최소한 ‘황금의 제국’에서는 그렇다. 사실, 인간 삶의 본질은 개별 인간이나 개별 조직 그 자체가 아니라 각 사람이나 조직, 그리고 상황들이 맺는 복합적 관계들 속에 있지 않던가. 매순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관계의 망들을 제대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해결책이다. 나 홀로 그 길을 가기보다 더불어 가게 된다면 오류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황금의 제국>을 쓴 시나리오 작가는 존경스러울 정도로 구체적이다. 마치 자신이 그 제국 속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직접 체험한 것처럼 디테일을 엮어나간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얼토당토 않는 비약이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판타지까지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고발성 다큐이기도 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 ‘보통사람들’조차 황금의 제국이 보여주는 모순과 문제들을 적극 타파하려는 의지와 용기보다 그 제국이 관장하는 세계를 기정사실화한 채 그 안에서나마 ‘한 자리’ 차지해보려는 욕망과 야심에 젖어 있지나 않은가 하는 점이다. 철거 반대 투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뒤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는 꼭 한번 이겨봐라"고 한 말씀을 기억하며 ‘황금의 제국’과 맞장 뜨려던 장태주가 "세상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라며 ‘황금의 제국’ 안에서 최고 자리를 차지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 과연 이것이 우리 자신이나 주변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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