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비를 통해서라도 당신을 기억할 수 있으니 그것은 행복입니다
상태바
비를 통해서라도 당신을 기억할 수 있으니 그것은 행복입니다
  • 박종훈(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
  • 승인 2013.08.12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종훈 신부의 동행

개굴개굴, 개굴개굴…

해마다 돌아오는 여름철이면 한반도에 형성되는 장마전선이 많은 비를 쏟아내곤 합니다. 그러면 온 세상이 마치 빗소리로 가득 찬 듯합니다. 그러나 쏟아지는 빗소리보다 더 큰 음성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소리가 있으니, 그것은 개구리 울음 소리입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비만 내리면 개구리는 그렇게도 하염없이 울어댈까요?

전래동화 <말썽 꾸리기 청개구리>는 그 사연을 다음과 같이 풀어내고 있습니다.

어느 연못가 마을에, "안으로 들어가라"하면 밖으로 나가고, "왼쪽으로 가라"하면 오른쪽으로 가고, "개굴개굴 하라"하면 굴개굴개 하는 말썽 꾸리기 청개구리가 살았습니다. 남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반대로만 행동하는 철부지 아들을 보면서, 엄마 개구리는 늘 애태우고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연못 언저리 풀 섶에는 무시무시한 뱀이 살고 있어서, 청개구리 엄마는 "풀 섶에 가면 안 된다"고 단단히 타이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개구리는 엄마의 말씀을 또다시 어기고 풀 섶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순간 뱀이 나타나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아들이 풀 섶에 들어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엄마는 부랴부랴 아들을 찾아 풀 섶으로 뛰어 들고, 위험에 처한 아들을 극적으로 구해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뱀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엄마 개구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엄마 개구리는 그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죽거든 냇가에 묻어 달라"고 말입니다.

뒤늦게 철이 들은 걸까요? 평생 반대로만 행동했던 청개구리였지만, 이번만큼은 반대로 하지 않고 엄마가 남긴 유언 그대로 엄마를 냇가에 묻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비가 내리면, 불어난 빗물로 인해 엄마의 묘가 떠내려 갈까봐 청개구리는 그렇게 밤새도록 울어댄다고 합니다.

동화 작가는, 엄마의 유언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반대로만 행동하니까, "산에 묻어 달라"하면 냇가에 묻을 테고, "냇가에 묻어 달라"하면 산에 묻겠지…’ 그래서 산에 묻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죽거든 냇가에 묻어 달라"고 그렇게 유언을 남겼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조금 엉뚱한 의문을 품어 봅니다.

과연 청개구리 엄마는, "늘 반대로만 행동해 왔으니까 여전히 반대로 하리라는 그렇게 단순한 예측으로 냇가에 묻어달라고 했을까?" 또한 "평생 반대로만 행동을 해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래서 자신을 대신해서 엄마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이 마당에, 마지막까지도 엄마의 뜻을 거슬러서 반대로 행동 하리라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을 겁니다.

엄마는, 늘 반대로만 해 왔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후회하고 있는 아들의 마음을 보았을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유언만큼은 반드시 그대로 지켜 주리라는 확신을 가졌을 겁니다.

그렇다면, 엄마 개구리는 왜 비가 오면 묘가 쓸려나가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냇가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을까요?

그것은 기억입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져 외로울 때, 그리고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고 괴로울 때, 목숨을 바쳐 자신을 한 결 같이 사랑한 엄마가 있음을 상기시켜 줄 수 있는 기억. 그래서 그 어떤 외로움과 괴로움마저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기억. 그렇게 당신을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로 엄마는 ‘비’를 떠올렸던 것입니다.

때문에 청개구리에게 있어서 ‘비’는 엄마의 묘가 쓸려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염려의 요소가 아니라, 한 결 같이 자신을 사랑한 엄마가 있음을 기억하게 해주는 기쁨의 원동력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내리는 비를 통해서라도 엄마를 기억할 수 있으니, 그것은 행복입니다.

엄마이든, 아버지이든, 친구이든, 아니면 하느님이시든… 우리 곁에는 당신의 목숨을 바쳐서 한 결 같이 우리를 사랑해 주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무언가를 통해서라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위로이고, 기쁨이고, 행복일 겁니다.

현재의 내가 어떤 사람이든, 무슨 일을 하든 그리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준 그분에 대한 기억으로, 우리 앞에 놓인 어떤 어려움도 외로움도 괴로움도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