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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무더위가 매력인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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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무더위가 매력인 계절
  • 박종훈(대전성모병원 워목실장)
  • 승인 2013.07.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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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신부의 동행

뜨끈뜨끈한 단팥죽, 혀가 데일만큼 펄펄 끓는 어묵국물, 갓 구워낸 붕어빵, 화덕에서 금방 꺼낸 군고구마, 따끈따끈한 호빵…
위에 열거된 목록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신지요?
그렇습니다. 찬바람 불어오는 겨울이면,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먹거리이자, 겨울에 즐겨 먹는 간식이며 별미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해 봅니다.
만약, 이 음식들을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먹는다면?’
혹시, 상상해 본적 있으신가요?
물론, 제가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단팥죽이나, 붕어빵이나 군고구마. 혹은 펄펄 끓는 어묵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먹어 보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루어 짐작컨대,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한겨울에 먹는 그런 맛은 결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참, 희한한 일이지요.
한여름에 끓이는 단팥죽이나 한겨울에 끓이는 단팥죽이나, 한여름에 끓인 어묵국물이나 한겨울에 끓인 어묵국물이나, 한여름에 구워낸 붕어빵이나 한겨울에 구워낸 붕어빵이나 매한가지 단팥죽이고, 동일한 어묵국물이고, 같은 붕어빵이요, 같은 군고구마일 뿐인데 말이죠.
‘왜 여름에는 한겨울에 먹는 그런 맛이 아닐까?’하는 점입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소재와 배경의 조화’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바다에 수영복을 입은 여인이 웃음 짓고 서있다면… 반대로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해변 파라솔 아래에 털옷과 목도리로 무장한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고 앉아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보는 이마다 실소를 머금거나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갈 겁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광경을 목격한 이들이 실소를 머금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영복을 입고 웃음 짓는 여인이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또한 털옷과 목도리로 무장한 사람이 못나서가 아닙니다. 다만, 수영복을 입은 여인(소재)과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바다(배경)가 조화롭지 못할 뿐입니다. 또한 털옷과 목도리로 무장한 사람(소재)과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해변 파라솔(배경)이 부자연스러울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뜨끈뜨끈한 단팥죽, 혀가 데일만큼 펄펄 끓는 어묵국물, 갓 구워낸 붕어빵, 화덕에서 금방 꺼낸 군고구마, 따끈따끈한 호빵은 찬바람 부는 겨울이라는 배경과는 조화를 이루며 잘 어울립니다. 반면 강렬한 태양빛에 숨을 헐떡이는 여름이라는 배경과는 조화롭지 못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음식이지만 그 맛은 배경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는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렇다면, 여름이라는 소재에는 과연 어떤 배경이 조화를 이루며 잘 어울릴까?’
저는 단연코 ‘무더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름이 덥지 않다면, 또한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햇볕이 강렬하지 않다면, 한여름 즐겨먹는 빙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맛(?)이 아닐 겁니다. 또한 더위를 피해 찾아든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맛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맛(?)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뜨끈뜨끈하게 달궈진 금빛모래에 온 몸을 파묻고 모래찜질 하는 맛도, 넘실거리는 파도를 향해 몸을 던지는 맛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맛(?)이 아닐 겁니다.
결국 빙수가 맛있고, 탁족(濯足)이 유쾌하고, 모래찜질과 물놀이가 즐거운 것은 여름이 무덥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여름이 우리에게 주는 이 특별한 매력들은 무더위라는 배경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제 빛을 발할 수 있고, 진정 특별한 매력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제언을 해 봅니다. 여름이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즐거움이 분명 그 안에 있으니, 맘껏 느끼고 즐기자고 말입니다. 무더위가 지나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불면, 이 여름을 다시금 그리워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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