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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골목길 깍두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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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골목길 깍두기의 추억’
  • 김재중
  • 승인 2014.08.04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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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기자의 뉴스리뷰 | 왜 아이들은 놀면서 어른이 되는 걸까

한 10년 쯤 된 이야기인가.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 뜬금없이 ‘깍두기’ 이야기가 회자된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짝이 맞지 않는 아이를 놀이에 끼어주며 부르던 말이 무엇이었느냐는 궁금증에서 출발해, 자신이 전략적으로 연마하던 놀이에 대한 이야기보따리까지 풀어져 웃음꽃이 만발했다.

무르익던 추억담은 급기야 직업병(?)을 발동시키기에 이르렀다. 당시 기자는 한 달 동안 골목 어귀와 초등학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렸다. 잊혀져가는 골목길 ‘깍두기’가 어딘가에서 콧물을 흘리며 환하게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초딩들의 고단한 하루

깍두기의 기억을 찾으려면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으로 돌아가야 할까. 당시 도시 골목은 지금처럼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돼있지 않았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골목길 흙바닥에 한 무리 아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놀이에 열중하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 골목길엔 아스팔트가 ‘쫙’ 깔리고, 흉물스런 일방통행 표지판만 남았다. 아이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학원 가는데요."

서울 마포구의 ㄷ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4학년 현준이는 교문 앞에서 학원 봉고차를 기다리며 애꿎은 돌멩이만 발로 차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속셈학원에 갔다가 집에 들러 태권도복을 챙기고 태권도장에 가야만 했다. 학교가 파한 뒤, 또래 녀석들과 어울려 해질 때까지 손을 ‘호~’ 불며 뛰어 놀던 기억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전에 불과했다.

때마침 노란색 승합차가 교문 앞에 정차하자 현준이를 포함해 네다섯 명 아이들이 그쪽을 향해 뛰어갔다. 그 중 두 녀석은 조금 전까지 문구점 앞에서 백 원짜리 오락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오락이 아쉬웠는지 멈칫멈칫 연거푸 뒤를 돌아봤다.

‘그래 지방으로 가자.’

학원을 서너 곳씩 돌며 강행군을 벌이고 있는 서울 아이들의 ‘고단한 하루’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문득 개발이 덜된 지방에 가면 한국 토종의 웃음을 간직한 코흘리개 녀석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생겨났다. 다른 볼일도 있고, 겸사겸사 찾아간 곳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한 면소재지에 있는 ㅂ초등학교였다.

"아유 참. 애덜도 없을뿐더러 핵교 끝나문 학원 가느라 바쁘지유. 요즘은 애덜이 더 바쁘다니께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초등학교 운동장엔 삭풍만 휑하니 불고 있었다. 학교 앞,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기자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생각을 혀봐유. 도시 애덜보다 집두 멀겄다, 핵교 끝나문 학원 봉고차 타구 맬짱 나가구, 버스도 간간히 들어오니 시간 맞춰 집에 가느라 정신 없지유 뭘. 게다가 요즘 시골까지두 인터네뜬가 뭔가 다 들어와서 오락하느라 정신 다 파는 걸유."


약자에 대한 배려 ‘깍두기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리는 법. ‘깍두기의 추억’을 서울 한복판에서 발견하고야 말았다. 서울 ㅎ초등학교 4학년 체육시간.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놀이의 이름을 대며 아우성이었다.

실 기자가 ㅎ초등학교로 찾아간 이유는 이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친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 학교 운동장에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놀이인 ‘오징어’와 ‘사방치기’ 등을 할 수 있도록 플라스틱 막대가 고정돼 있다.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육체적인 건강만 얻는 것은 아닙니다.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고, 무엇보다 사회성을 체득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죠."

김 모 교사는 놀이가 아이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올바르게 성장시킨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음은 김 교사가 사례로 든 한 가지 일화다.

과거에 한 선생님이 지적장애아들에게 술래잡기 놀이를 가르치려 스스로 술래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술래에게 잡히지 않으려 도망가기는커녕 거꾸로 술래인 선생님에게 뛰어와 안겼다. 몇 번이고 놀이를 가르치려던 선생님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장애아들과 비장애아들이 함께 여름캠프를 연 적이 있었는데, 이 선생님은 ‘행여나’ 하는 마음에 술래잡기 놀이를 함께 가르쳐 봤다. 그랬더니 학습능력이 부족했던 장애 아이들이 금새 놀이를 배워 함께 뛰어 놀더란 것이다. 결국 또래 집단에서 배우는 학습이 선생님의 노력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던 셈이다. 김 교사는 단언했다.

"개인적으로 시소, 그네, 미끄럼틀로 정형화된 놀이터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붕어빵처럼 똑같이 만들어놓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겠어요."

골목길 아이들의 놀이터는 칙칙한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동네 공터에는 빼곡히 빌딩이 세워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배려한답시고 서양의 놀이터를 주민센터 앞뜰에, 아파트 주차장에 그대로 옮겨다 놨다. 그리고는 득의만면 웃음을 지으며 "마음껏 뛰어 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배려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 발달에 오히려 해악이 됐다. 여럿이 함께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 속에서 ‘깍두기’가 사라지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추위에 손등이 갈라져 피가 찔끔찔끔 나와도, 콧물을 훔치며 손을 ‘호~’ 불어도, 정말 춥지도 아프지도 않은 ‘따뜻한’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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