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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시작과 끝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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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시작과 끝을 알리다
  • 최민호(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 승인 2013.06.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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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들’ ‘큰들’서 식민지배와 함께 ‘大平’ 명명

금남면은 세종시 9개면 중에서 가장 큰 면이고, 그 중심시가지를 대평리라 한다. 대평리에는 금남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소방서 등의 관공서뿐만 아니라 농협, 새마을 금고, 신협, 교회, 성당 그리고 중요한 대평시장이 있다. 금남면의 트레이드마크가 바로 대평리이다.

대평리(大平里). 금강가의 넓은 뜰이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정작 행정구역상 대평리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1910년경 감성리에 있던 시장이 대평리로 옮겨 대평장이 되면서, 1914년 삼거리 하거리 고사동 등 옛마을들을 통합하여 대평리라 명명하였다. 바로 일본인들이 한국을 점령하면서 금강변의 갈대숲에 불을 놓아 평지로 만들면서 붙인 이름이었다.

대평리가 있기까지 금남면의 가장 큰 마을은 감성리였는데, 일제가 시작되면서 감성리는 위축되고, 대평리가 커지게 된 것이다. 대평리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되면서 일본인에 의해 명명되고 개발되고 발전된 지역인 셈이다. 이름마저 ‘한들’ ‘큰들’로 불리던 것이 일본식 한자인 '대평(大平)리'가 됐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의 대평리는 금남뿐만 아니라 연기군 전체에서도 가장 번화한 마을의 하나가 되었다.

35년간의 치욕적인 일제식민 지배가 끝난 직후인 1946년. 그해의 6월 장마는 일제 식민지의 찌꺼기라도 쓸어버리기라도 하듯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6월 27일 시작한 비가 28일이 되자, 장대같은 비로 금강물이 삽시간에 불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북쪽의 조치원읍내의 제방인 조천둑이 범람의 위험수위에 달하기 시작하였다. 단 하루만이었다.

조치원 주민들이 모두 나와 심야의 조천둑의 붕괴에 대비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둑은 금남 쪽에서 먼저 터지고 말았다.

바로 대평리였다.

넓디넓던 대평리가 범람한 금강물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상황은 급박하였다. 긴급하게 대피하라는 마을리장의 다급한 소리에 한마디 비명도 못 지르고 맨몸으로 강당산에 올라가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에 잠기는 대평시가지를 바라다 볼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참혹하였다. 360호의 가구 전부가 물에 잠겼다. 집들이 무너져 내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면사무소가 통째로 떠내려가 호적이 들어있는 캐비닛을 부여 백마강에서 건져 왔을 정도였다. 마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사상 유례가 없는 엄청난 수해로 마을은 복구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대평리가 애초에 금강변의 갈대밭 저지대를 개발한 만큼 또다시 수해가 온다면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차라리 대평리를 떠나 지대가 높은 지역으로 마을 전체를 이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새로운 이주터가 용포리였다.

용포리. 옛날에는 ‘미리포’라 불리던 지역이다. ‘미리’는 용을 뜻한다. 그 용포리에 새로운 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면사무소, 우체국과 시장 등이 새롭게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대평리는 행정구역에서 없어지고 대평리가 있던 지역은 용포리 3구가 되었다. 대평리는 공식 행정구역명칭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비록 대평리는 행정구역에서 없어지고 용포리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의 번화했던 대평리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용포3구를 구대평이라 부른다. 시장이름도 용포리에 있지만, 대평시장이라 하고, 교회도 대평교회, 상가의 간판도 대평상회라는 식으로 지었지만, 사실 대평리는 없어진 전설상의 이름일 뿐이다. 대평리에는 대평리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일제가 시작되던 1910년경 대평리가 만들어졌고 일제가 패망한 1946년 대평리는 없어졌다. 대평리는 일본과 함께 시작되어 일본과 함께 끝난 마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포리로 알기보다는 대평리로 알려지는 관행은 바꾸어야 한다고…

그 예전의 대평리가 지금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공공기관이 들어서는 새로운 중심지로 조성되고 있다. 저지대의 결함을 극복하고자 대대적인 복토작업을 병행하며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을 이름 또한 새롭게 지어지고 있다. 이름 하여 대평동.

도시의 역사는 늘 새롭게 쓰이기 마련이다. 그 이름 또한 늘 새롭게 지어진다. 하지만,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시인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인가. 새로운 대평이 탄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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