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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색된 한반도 정세, 그의 빈자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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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색된 한반도 정세, 그의 빈자리가 크다
  • 김재중
  • 승인 2013.05.31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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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을 따끔하게 훈계했던 한국의 거인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전쟁위기를 고조시킨 뒤 개성공단 잠정폐쇄로 이어졌다. 정치는 물론 경제교류마저 단절되면서 긴장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 극우인사들의 연이은 망언으로 한일관계도 한껏 경색됐다. 대내외적으로 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해당 국가의 헤게모니를 쥔 극단주의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는다.

때문에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현실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이 같은 냉각기류를 풀기 위해서 말 한마디에 큰 무게감이 실리는 국가원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원로급 인사까지 나서 망언을 쏟아내는 일본에는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특사’로 거론될 만한 원로급 인사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점이 문제다. 북한이 최용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특사로 보낸 점도 한국이 외교적 선수를 빼앗긴 듯한 무능력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때문에 미국과 일본에 거침없이 ‘훈수’를 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자리가 더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선제공격 멈추라"네오콘에 일침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지난 2005년 일본을 방문한 김 전 대통령이 동경대에서 미국 강경파와 일본의 우익에 대해 쏟아냈던 날선 비판을 떠오르게 만든다. ‘당시 연설이 지금 이 순간에 나왔다면 어땠을까’라는 하릴없는 상상에 빠지는 이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시 동경대 야스다 강당에서 열린 ‘한반도 공존과 동북아시아의 지역협력’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 특별강연자로 나서 북핵문제 해법과 동북아 협력체제 구축 등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동경대 교수와 학생, 주일 외교관, 언론인 등 1500여명이 참석했는데, 일본 밖 전·현직 국가원수 중 동경대에서 강연을 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이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미국 공화당 정부 내에서 대북 선제공격론과 봉쇄론 등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지금은 그러한 (강경한) 조치를 취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안전보장을 해주고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하며, 주변의 모든 나라들은 북한이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당시 이 이야기는 ‘네오콘’이라 불리는 미국 내 보수강경파를 향한 일침으로 해석됐다.

그는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 주장, 선제공격설 등 불길한 말들이 오가고 있다"고 우려하며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하며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한 검증을 받으라"고 북·미간 동시행동을 요구했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불신이 크기 때문에 그 실천은 동시에 해야 한다. 6자회담 당사국들은 그 실천을 보증하고, 만약 어느 한쪽이 약속을 어기면 엄중한 공동대응을 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남북한의 평화공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북미관계만 개선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자신의 재임 기간 중 성공시켰던 6·15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모두 민심이 크게 변화하고 긴장이 완화되었다"고 평가했다.

"독일에게 배워라"日우익에 훈수

이후 한·일관계를 거론한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일본 정부와 여당의 지도자를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과거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심지어 시혜적인 업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며 "이것은 ‘오부찌-김 공동선언’(1998년 일본의 오부찌 전 수상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일본의 과거사를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고 언급한 일)을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사 문제는 한일 간, 혹은 국민과 국민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과거의 불행한 경험에서 올바른 교훈을 터득하려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며, 양식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대결"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일본은 독일의 태도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며 독일의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적 태도와 확고한 교육을 언급, 일본 청중들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독도 문제도 빼놓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독도문제에 대한 영유권 갈등도 양국관계를 저해하는 요소"라며 조목조목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비판하고 난 뒤 "일본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참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며 "이 약속이 실천되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일본 현지 언론조차도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혜안을 발견할 수 있었던 자리"라며 칭찬할 정도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큰 틀에서 한반도 정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남북관계는 잠시 화해무드를 타는 듯 봄바람이 불다가 이내 얼어붙곤 했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과거사를 반성하는 목소리를 내다 돌연 ‘오리발 망언’을 되풀이했다.

이런 순간,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원로의 무게감 있는 ‘행동과 말’이 제어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8월 18일 세상을 떠난 뒤,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에드윈 풀너 대표는 "오늘 한국은 거인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오늘에 이르러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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