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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경제민주화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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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경제민주화 구하기
  • 강수돌(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3.02.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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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119조 2항에는 경제민주화 조항이 있다. 그것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요컨대 균형 성장, 적정 분배, 남용 방지, 주체 조화 등이 경제민주화의 내용이며, 이를 위해 국가의 경제 개입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향해 달려온 지난 50년 동안 한국 경제는 물리적으로 250배나 덩치가 커지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랑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하는 사회경제 양극화나 빈부 격차, 재벌의 지배력 강화 및 사회 불만 증가, 노동 억압과 노사 갈등 등 구체적 현실은 여러 대선 후보들로 하여금 경제민주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우지 않을 수 없게 했다.

2012년 7월 10일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출마 선언을 했다. "저는 (국정 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꾼 위에서)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복지의 확대’를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2012년 11월 16일,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했다. "저는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모든 경제주체들이 성장의 결실을 골고루 나누면서, 그들이 스스로 변화의 축을 이루어 조화롭게 함께 커가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이를 위해 경제민주화를 5대 분야를 나누고 전체적으로 35개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5대 분야는 경제적 약자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개선, 대기업집단 관련 불법행위와 총수일가 규제,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이다.

그리고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박근혜 후보가 51.6%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과반수의 국민들은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 중심의 공약이 구현되어 국민 행복 시대가 열릴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2012년 2월 21일, 취임식 4일 전에 제시된 박근혜 정부 5대 국정목표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사실상 제외되었다. 이러한 비판을 인식했는지, 2월 25일 취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만 한다"며 경제민주화 개념이 실종되지는 않았음을 시사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일어설 수 있도록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펼쳐 대·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경제의 중요한 목표"란 말에서 드러나듯, 시장경제 질서 확립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정도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나는 크게 두 가지 우려를 한다. 하나는 대선이라는 국가 중대사 과정에서 제시했던 공적인 약속을 엄격히 지키려 노력하기보다는 마치 ‘그건 대선용 낚시’에 불과하다는 듯 은근슬쩍 피해가려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의 우려는 설사 선거 전 공약이 지켜진다 하더라도 농민이나 노동자, 일반 시민 등 국민 대다수의 눈높이에서 볼 때 과연 그것이 참된 경제민주화를 구현하는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가장 구체적이라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공약(11월 16일)에서조차 그것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대기업의 불합리한 관행 개선 정도에 그치고 있어, 농민의 황폐화나 노동자의 비인간화 등 문제는 대통령이나 새 정부의 시야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국민이 행복한 희망의 새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 지난 50년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되어 온 사람들(노동자, 농민, 서민, 학생, 여성, 이주민, 자영업자, 영세중소기업인 등)에게 겸손하게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토론하고 협의하여 바람직한 제안을 하면 정부는 그 실현을 도와주는 형태로 개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재벌이나 보수 기득권층과 정면 대결하느냐 아니면 그들의 요구에 순치되고 마느냐, 바로 이것이 문제다. 강자 앞에 순치되지 않고 정도를 걷는 것, 바로 이것이 실종된 경제민주화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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