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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토끼가 돼지로, 돼지가 송아지로 된 기적 같은 ‘가축은행’으로 학비를 마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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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토끼가 돼지로, 돼지가 송아지로 된 기적 같은 ‘가축은행’으로 학비를 마련하다
  • 이성원(연기새마을금고 이사장)
  • 승인 2012.08.1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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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을 청소년 선도와 사회계몽 운동을 해온 이가 있다. 꼬박 50년이다. 연기새마을금고 이성원 이사장은 1960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 구현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고 있다. 이 이사장이 청소년 선도와 사회계몽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1960년 조치원역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버려진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잠 잘 곳을 제공하고, 호적도 없어 학교마저 들어갈 수 없는 ‘무호적자’를 위해 ‘호적갖기국민청원’을 하기도 했다.
<세종포스트>는 이성원 이사장의 청소년 선도, 사회계몽 운동을 중심으로 연재를 한다. ‘시민참여 일간지’인 <세종포스트>는 이처럼 세종시민이 참여해 만드는 신문이다. <편집자 말>



▲ 가축은행을 보도한 언론

청소년 일인 일기교육으로 자립운동 전개
토끼 240마리 분양으로 가축은행 시작


1970년 5월 청소년의 달에 필자는 학비가 없어서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가축을 길러서 학비를 준비하자’는 ‘가축은행’ 설립 제안하고 호소했다. 당시 필자는 고아와 걸인들을 모아 자립갱생을 교육하는 희망원 원장과 (사)한국사회교육협의회 이사장을 겸하고 있었다.

1970년만해도 한국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 전쟁고아가 많았고, 학생들의 학비가 없어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학을 못한 청소년들은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워 결국 걸인행세를 하거나 비행을 저지르는 구렁텅이에 빠지는 게 부지기수였다.

당시 인구 1500만명 가운데 청소년 인구가 56%인 840만 명이었는데, 문교부는 이들 청소년의 의무교육을 중학교까지 하려 했으나, 80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마련하지 못해 중학교 의무교육을 1980년으로, 십년을 미룬 상황이었다.

이렇듯 정부도 청소년 교육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자는 1967년에 ‘일인일기교육’으로 철사로 공예품을 만드는 자립운동을 펼쳤다. 아울러 1968년 봄엔 조치원에 사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토끼 240마리를 분양해 가을에는 누가 토끼를 잘 키웠는지 품평회를 열어 ‘가축은행’을 장려했다. 봄에 나눠준 토끼를 잘 키운 청소년들에게는 1등부터 4등까지는 상품으로 돼지새끼를 한 마리씩 분양했다. 토끼가 돼지가 된 것이다. 또 청소년들에게 장려상으로 어미닭 20마리를 상품으로 분양했다. 1969년 봄에는 240마리의 토끼와 토끼 새끼 70마리를 더 추가해서 분양했다.

가축은행은 해를 거듭 할수록 잘 됐다. 1970년엔 가축사육을 잘한 청소년에게 상을 주었는데, 당시 연기군 전동면 보덕리 이재영(당시 39세)씨의 큰딸 이정순(당시 13세·전동면 송덕국민학교) 양은 토끼를 돼지로, 다시 돼지를 송아지로 키워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또 연기군 서면 와촌리에 사는 안희철(당시 40세)씨의 셋째 딸 안영실(당시 13세·서면 와촌초등학교) 양은 200여 마리의 어미닭을 길러 월 수입 3만원이라는 당시에는 큰 수익을 올려 학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필자는 청소년들이 가축을 길러 학비를 마련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뿌듯했다. 교육을 받고 싶어도 학비가 없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는 필자가 추진한 ‘가축은행’이 큰 힘이 됐다.

▲ 1970년 봄에 가축은행에서 분양받은 닭을 들고 있는 안영실(13세) 양과 친구들
▲ 토끼를 키워 돼지가 되고 돼지를 다시 송아지로 키운 이정순 양과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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