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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의 글 읽는 소리가 담 너머로 들릴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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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의 글 읽는 소리가 담 너머로 들릴 때 까지...
  • 윤은실(문화관광해설사)
  • 승인 2012.07.12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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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실의 향토사 l 육영재

꽃이 피고 바람 고운날
지금은 연기군에서 세종시로 바뀐 연동면 송용리에
위치한 육영재를 찾았다.

육영재는 향토유적 39호로 지정되어있다.
송용리 마을로 들어서면 마을 뒤쪽으로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큰 집이 나온다. 그 집 담을 끼고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넓은 마당과 함께 옛 멋을 그대로 담은 넉넉한 한옥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찾아간 날 대문이 굳게 닫혀있어 담 너머로 까치발을 치껴뜨고 안을 들어다 보며 생각한다.
지금은 굳게 닫힌 대문 너머로 글 읽는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언젠가는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 육영재는 결성장씨가문의 문중서당으로 지금으로 치면 사립학교인 것이다. 기록에는 '유영재', '송동서숙', '송동재', '송남서당' 등의 명칭으로도 전해진다.

『결성장씨족보』에 의하면, 서당이 처음 건립된 것은 약 400여년 전인 조선 14대 선조 대의 일이며, 처음 서당을 세운 인물은 자헌대부 한성판윤 장세인(世仁)의 부친인 27世 장훈(訓)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자신의 세 동생 열(說) 전(詮) 순(詢)들과 함께 연기 동쪽 송곡리(松谷里)에 정착한 후 서숙을 세워 자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서당과 관련된 기록은 1876년(고종 13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이후의 기록들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건 이전의 사실은 확인하기 어렵다. 1879년에 김철진(金哲鎭)이 지은 '송남서당 이건기(松南書堂 移建記)'에 의하면 1876년 현재의 위치로 서당을 옮겨 짓기 이전에 이미 3차례나 서당의 이건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시기나 이건 장소 등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없다.


조선 말 개화기에는 신식학문을 교육하는 기성학교(期成學校)를 개설하여 초 중 고 과정을 교육하다가 1925년에 연동공립 보통학교가 세워지자 폐교되었다. 이런 기록으로 볼 때 우리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사립학교인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문중에서는 해방 직후까지 이곳을 후손들에게 한문을 교육하는 한문서당으로 이용하였으며, 비록 서당으로서의 교육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현재까지도 현재 문중에서 서당계를 유지하여 육영재를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당 건물은 ㄱ자형의 건물로 팔짝지붕을 하고 정면에는 툇마루를 만들었다.
팔작지붕은 처마가 살짝 치켜 올라가 보는 이로 하여금 건물의 단아함과 산뜻한 느낌을 준다.
건물자체가 잘 보존되어있고 관리도 잘 되어있다.


결성장씨 문중에서 많은 애정을 갖고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툇마루에 먼지가 쌓여 있지만 언젠가 깨끗이 없어질 때쯤이면 아이들의 글읽는 소리와 마당에서 뛰어노는 소리가 함께 들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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