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고전영화 ④ 400번의 구타
여름더위처럼 공부에 찌들어가는 지겹고 괴로운 학교생활이 이제 곧 기말시험만 지나면 끝난다.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고 끝나는 기분을 주는 방학이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아이들에게만 잠시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너무나 염려하는 학부모들에게는 방학이야말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보다 더 심하게 짜임새있는 학습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잠깐이라도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좋다는 조언도 무색하다. 마음껏 뛰놀고 싶은 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은 살아있는 어린 시체다.
▲ 400번의 구타 한 장면. 소년원에서 탈출해 바닷가에 다다른 소년의 모습. |
영화관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아이들 주연의 영화들도 결코 적지 않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어린이들을 주된 관객층으로 설정해 제작된다. 아닌 게 아니라 ‘청소년관람가’라는 영화상영등급을 얻기 위해 대다수의 오락영화들도 폭력성과 선정성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영화 관객의 중요한 연령층은 청소년이거나 청소년쯤의 정신연령을 가진 성인이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들은 즐비하지만 대부분 현실을 떠나 환상속에서 일시적으로 쾌락을 얻게 해주는 것들에 불과하다. 이에 비하면 성인들에게는 현실의 불합리와 사회의 부조리를 일깨워주는 영화들이 간혹 제공된다. 물론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가벼운 영화들이 더 많은 상황이지만.
정색을 하고 질문해보자. 왜 성인들에게만 현실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제작될까? 청소년들에게는 왜 그런 영화가 제공되지 않을까? 청소년들은 그들의 현실을 제대로 볼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영화관객의 중요한 연령층을 형성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덜 자란 미숙아 취급을 당하며 자신들의 현실을 외면하도록 강요당하는 영화들만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뜨거운 여름. 아이들에게보다는 가정에 아이들을 둔 어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아이들의 영화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겠다. 여기서 소개하는 영화들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른들의 말을 빌리자면, ‘못돼먹은 어린 것’들이 하라는 공부 안하고 난리법석을 피운다.
도저히 학교공부에 흥미가 없는 우리의 어린 소년 앙트완은 제각각 자신의 일상에만 매몰되는 부모 아래서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 무조건 복종만을 강요하는 학교는 소년의 답답증을 해소할 수 없다. 무단결석을 하고 엄마가 죽었다고 거짓말하고 집에서 가출하고 도둑질도 한다. 누가 봐도 문제아인 앙트완은 급기야 소년원에 들어간다. 점점 옥죄는 통제 속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던 그는 역시 거기서도 탈출을 한다. 그 긴 탈주의 끝에서 소년은 바다를 만난다.
Tag
#NULL
저작권자 © 세종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