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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 고고학으로 풀 수 없는 2%의 세계[인터뷰] ‘문헌 풍속학자’ 구중회 공주대 명예교수
구중회 공주대 명예교수는 역사학과 고고학으로 풀 수 없는 2%를 문헌 풍속학으로 보충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는 ‘계룡산 도사’ 또는 ‘사주팔자 연구가’로 불린다. 스스로는 ‘실패한 시인’이라고 말한다. ‘문헌 풍속학’이란 생경한 학문을 연구한다. 구중회(72) 공주대 명예교수다. 흥미진진한 만남을 기대하며 그가 일러준대로 공주대 후문 길 건너편 아파트를 찾았다.

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아파트 천장과 현관 사이에 ‘한국풍속문화연구원 지식 곳간채’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문 중앙에는 ‘심청이 도상이 전래한 길’이란 B4용지 크기의 글귀가 붙어 있다. 이집트 문헌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족자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다. 거실은 전체가 책장으로 채워져 있다. 읽다 만 책 몇 권이 쌓여 있는 탁자가 의자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부엌에는 커피잔과 몇 가지 도구가 놓여 있는 손님맞이용 탁상과 의자 3개가 좌우에 배치돼 있다. 수납장에는 시인 박목월의 사진이 걸려 있다.

남쪽 창문 앞에 서니 눈앞에 금강과 공산성이 펼쳐져 있다. 전망이 참 좋다고 말문을 열었더니 오는 사람마다 그런 이야기를 한다며 웃는다. 그러더니 곧 기분이 나쁘단다. “사람이 좋다고 해야지 풍광만 좋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느냐”는 이유였다. 얼굴에 활짝 미소를 머금은 그는 “조망이 마음에 들어 2000~3000만 원을 얹어서 집을 구했다”고 했다.

사실 이 아파트는 그가 출퇴근하는 연구원이다. 그는 30년간 공주대에서 교수로 정년퇴직한 뒤 생활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해 연구원을 냈다고 한다. 연구원의 조건은 네 가지였다.

첫째는 금강이 보여야 했고, 둘째는 공산성을 볼 수 있어야 했다. 셋째 공주대 도서관과 100m 이상 떨어지면 안 됐다. 넷째 터미널이 가까워야 했다. 실제 ‘한국풍속문화연구원 지식 곳간채’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터미널 입구에서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대학도서관도 지척이다. 1만 권의 서적을 갖춘 지식 곳간채가 제1 도서관이고, 공주대 도서관이 제2 도서관인 셈이다. 지인들은 지식 곳간채의 책이 만권인 데서 착안해 그의 호를 ‘만권당’이라고 지어줬다.

현관의 신발장은 도교에 관한 책들이, 작은 방에는 한지로 된 오래된 책들과 현대에 발간한 문집들이, 안방에는 모니터 3개가 있는 컴퓨터와 중국 원서들과 문집, 불교 서적들이, 북쪽 방에는 향토자료와 우리나라 역사 서적, 문헌 풍속학 서적, 미술, 음악, 춤 관련 서적들이 꽂혀 있다. 문헌 풍속학이란 미속과 무속, 관혼상제, 무덤 등과 관련한 학문이다.

거실에는 명리학 서적들, 일본 원서, 여러 나라의 외국 원서, 각종 사전, 무속과 관련해 그가 편집해 복사해놓은 책자들로 가득했다. 그는 거실을 ‘사전방’이라고 불렀다. “세상에 한 권밖에 없는 책”이라고 말하는 서적도 많았다.

― 박목월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던데 어떻게 인연이 됐나.

“1970년대 중반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는데 박목월 선생이 당시 대학원장이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박목월 선생 때문에 한양대에 갔다. 한 학기 위로 서울 윤석산(尹錫山)과 공주 윤석산(尹石山)이, 한 학기 아래로는 이건청이 석사과정을 다녔다. 석사과정은 박목월 선생께 마치지 못하고 당시 <현대문학> 주간으로 후임 대학원장으로 부임한 조연현 선생께 받았다.

지금도 목월 선생님을 생각하면 두 가지 추억이 생생하다. 목월 선생님은 육영수 여사의 문학 가정교사였다. 당시 박근혜 영애가 <육영수 여사>의 저자인 목월 선생님께 드린 원고료로 을지로 3가에서 세상에서 처음으로 회냉면을 먹었던 일이다.

또 한 가지는 연구실에서 시 강의를 하던 일이다. 육갑 성냥 통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는데, 목월 선생님께서 ‘성냥 통은 어디에 있노?’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경주 분이라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셨다. 아직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막연히 생각해본다.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하여 내가 오늘 ‘실패한 시인’이 된 것이라 여겨진다. 아무리 보아도 내 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시집 <은하수 건너가며 스치는 여름밤> <걸어 다니는 명당> <입맞춤에서 가을까지>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발간한 한·몽 시집 <한국에서 온 새 한 마리>, 평론집 <충청시인론> 등을 출간했다.

구중회 공주대 명예교수는 지금으로부터 3258년 전 이집트의 ‘아니(Ani)’ 설화와 우리 전래 설화 ‘심청’의 유사성에 대해 말한다. 이집트의 설화가 한국에서 변형됐다는 얘기다.

― 문헌 풍속학, 생소한 영역의 학문이다.
 
“맞다. 이런 학문의 영역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내 전공이 민속학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이 용어가 싫다. 민속이란 일반 서민들의 풍속인데 궁속(宮俗, 궁궐의 풍속) 등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영역을 포괄하는 학문이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 문헌 풍속학은 어디에 활용될 수 있나.

“적어도 나와 직접 관련이 있는 학문영역으로는 ‘기록’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학과 ‘유물·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고고학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영역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많다. 문헌 풍속학이 역사학과 고고학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평생의 과제로 생각해왔다.

종교풍속이나 관습풍속, 이른바 문화권에 속하는 광의의 풍속과 협의의 여러 가지 풍속들을 풀 수 있다면, 역사학이나 고고학과 함께 역사의 열쇠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령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백제 역사 유적지구인 공주·부여·익산 등지의 백제 역사를 푸는데 백제 역사학과 백제 고고학이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2%가 부족하다. 이 부족한 2%를 백제 풍속학을 적용해 보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동안 <풍속문화로 본 무령 임금의 12가지 비밀> <백제기악>(공저) <스토리텔링 백제가요>(공저) <숙모전 의례 연구>(공저) 등을 발간했다. ‘백제 풍속학’을 향한 그의 발걸음은 지칠 줄 모른다. 요즈음은 <한류왕국 백제궁중기악>(가제)를 집필 중이다. 백제궁중기악 상설공연이 처음 열렸던 날을 기념해 2019년 3월 24일 출간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 최근 <붓은 없고 필만 있다>는 책을 내셨는데, 문헌 풍속학과 관련 있는 것인가.

“친한 사람은 나보고 ‘잡학자’라 당신의 학문영역을 알 수가 없다고 농담을 한다.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옛날 문인들의 문인 풍속을 이해하려면 붓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겠나. 최근에는 <넋전굿>(가제)에 관한 저서를 어떤 스님과 함께 기획하고 있는데 역사 무속 풍속이다.”

그는 그동안 무속과 관련한 많은 저술 활동을 해왔다. 민속풍속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계룡산 굿당 연구> <충청도 설위설경 연구> <경책문화와 역사> <종리경책 연구> <계룡산 산신제 학술보고서>(공동 참여) 등이 있다. 특히 <경책문화와 역사>는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궁중의 무덤에 관한 풍속을 소재로 연구한 <능묘와 풍수문화>란 책도 있다.
 
 

백제금동향로에 대해 설명하는 구중회 공주대 명예교수

― 명당이 진짜 있기나 한 건가.

“솔직히 명당은 잘 모르겠다. 조선 시대 임금 무덤의 풍수를 통계를 보면 본다면, ‘명당의 징표’라고 할만한 것을 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당’은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명당이란 어떤 사실이라기보다는 ‘한국적 신앙’이 아니겠나. ‘명당이 있기는 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광신(狂信)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한국명리학의 역사적 연구>를 출간한 바 있는데, 사주팔자와 명리학은 어떤 관계인가.

“‘명리학’과 ‘사주팔자’는 같은 의미다. 명리학은 학술적 용어이고 사주팔자는 실천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동전의 앞・뒤 모습이라고 해도 좋다. 명리학은 자기계발의 방법으로도, 예언의 방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사람의 타고난 품격과 중심이 되는 운세를 ‘격국(格局)’이라고 하는데, 이런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 ‘터닝포인트(Turning point)’를 자주 말씀하시는 데 무슨 뜻인가.

“1990년 호주 여행을 가서 프랑스 노인 부부를 만나서 겪은 일이다. 그 노인 부부를 산책하는 해변에서 자주 만났다. 호주에 온 지 4개월 됐는데 앞으로 2개월 더 있을 거라고 했다. 놀라운 것이 호주에 집을 판 돈으로 여행을 왔다고 하더라. 어떻게 집을 팔아 여행을 올 수 있나. 충격이었다. 이것이 내 삶의 터닝포인트였다. 간혹 나에게 유연한 사고를 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마 이 터닝포인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고와 발상의 전환’이 된다면, 삶이 훨씬 넉넉해지고 풍요해질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헤어지기 전 자신이 쓴 시 한 수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당신의 양말과 장갑’이란 제목의 시다.

1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에서 하얀 장갑을
죽은 이도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모두 양말과 장갑을 신습니다그려.
손톱이나 발톱이 모두 필요 없는
당신의 파란 하늘이 그립습니다그려.

2
발톱을 가린 양말을 신고
거리로 쏟아져 뛰어다니는 것
실로 무섭습니다.
오색으로 손톱을 칠하며
장갑을 끼지 않는 것
실로 무섭습니다.

유태희  naturec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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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 구중회 2018-10-30 08:40:27

    인터뷰 감사합니다. 약사학과 고고학이 풀지 못한 2%를 풀도록 '문헌풍속학' 학설을 완성해나가도록 하라는 '지상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해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세종포스트>가 발전하기를 빌겠습니다. 구중회 글   삭제

    • 류현 2018-10-30 08:39:25

      좋은 글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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