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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다문화 국가 프랑스의 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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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다문화 국가 프랑스의 뿌리는?
  • 이규식
  • 승인 2018.07.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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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문화의 눈으로 보다’] <2>베르생제토릭스 동상

여러분은 바쁜 일상 속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것들이 많은 삶을 살고 있지 않으십니까? 문학평론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이규식 교수가 소소한 것들에 숨어 있는 문화 현상, 거리를 거닐고 여행하며 바라본 것들, 사람들의 생활습관, 매너와 에티켓 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필자 이규식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남대 교수(프랑스어문학전공)로 재직 중입니다. 대전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대전시 도시디자인위원,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달의 책 선정위원장, 외교부 시니어 공공외교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편집자 주>

이규식 문학평론가 | 칼럼니스트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대표팀에서 백인은 2명에 불과하고 거의 전부 검은 피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유럽의 중심국 프랑스에 무슨 흑인들이 이리 많은가 대부분 의아해했다.

20년 전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차지할 당시 멤버들도 흑인 위주였다.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같이 걸출한 기량의 이민자 후예 선수들이 사상 최초 우승이라는 영광을 만들었다. 정작 월드컵은 프랑스 사람 쥘 리메가 1930년 창설했지만, 프랑스는 1998년에 이르러서야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자유와 낭만, 예술의 고장이라는 프랑스, 특히 파리를 여행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그려보던 이미지와 다른 정경에 실망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하루 이틀 단기간 파리를 보고 가는 패키지 관광 여행자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거리에 널브러진 쓰레기와 담배꽁초, 지하철 공간에 배어있는 악취와 퀴퀴한 냄새, 그리고 멋지고 세련된 차림새의 파리지앵 (‘파리 사람들’이라는 프랑스어)을 보려나 했더니 온통 유색 인종 행인들이 꾀죄죄한 차림으로 바쁜 듯 스쳐 가는 거리를 본다. 마로니에 거리의 낭만은 이런 의외의 정경들로 인하여 사라지고 만다.

다문화 원조국 프랑스는 일찍이 확보한 해외 식민지로 인하여 국민 분포에서 외래인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의 경우 특히 서부지역 20여 국이 프랑스 식민지였고 아시아, 남태평양, 아메리카 대륙 등 비록 부분 부분일지언정 오대양 육대주에 걸친 광범위한 과거 식민지 보유는 프랑스 인종 구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식민지로부터의 인구 유입이 아니더라도 프랑스가 유럽대륙 한복판을 차지한 지정학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온갖 인종이 오가며 모여드는 교차로여서 다양한 인종 분포는 불가피하였다.

프랑스 알레지아에 세워진 베르생제토릭스 동상

그러나 토종 프랑스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금의 프랑스 땅에 오래전부터 살았던 골루아족(族), 흔히 갈리아족이라고 부르는 민족이 그들인데 그리 크지 않은 체구에 재빠르고 수다스러운 언변, 환경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는 순응력, 예리하고 거침없는 비판 정신과 까칠한 말투를 골 족의 특징으로 꼽기도 한다.

아직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이었으므로 드루이드교를 믿으며 소박한 생활을 영위한 이들의 일상과 감성, 의식은 특히 프랑스 국민 만화로 평가받는 ‘아스테릭스’ 시리즈를 통하여 세밀하게 알려진 바 있다.

르네 고시니와 알베르 우데르조가 함께 만든 이 만화는 만화라는 한정된 범주를 넘어 인문 텍스트로서 전 세계에서 애독되고 있다. 영리하고 재빠른 아스테릭스와 행동은 굼뜨지만 우직하고 순수하기 그지없는 친구 오벨릭스가 펼치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은 프랑스 국민 정체성의 일단을 확인시켜주고 온갖 인종이 섞여 사는 현실에서 민족 자긍심을 확인시키는 소중한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런 골 족이 기원전 52년 프랑스 중부 알레지아 평원에서 시저가 이끄는 로마군에 패배하면서 프랑스는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알레지아 전투에서 분전한 리더 베르생제토릭스는 비록 패전 장수이지만 지금도 프랑스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베르생제토릭스(위)와 시저

전쟁에는 졌지만, 끝까지 항쟁하여 민족정기를 보여준 베르생제토릭스에 대한 존경은 유럽연합 체제에서 점차 잊혀가는 국민감정, 프랑스라는 민족 자부심을 일깨우는 유용한 촉매가 되고 있다. 알레지아 전투현장에 높다랗게 세워진 베르생제토릭스 동상은 로마로 압송되어 온갖 모욕과 핍박 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골수 프랑스인의 긍지를 상징한다.

모든 이민족, 이문화를 받아들이며 혼융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되 자신들의 뿌리를 늘 되새기는 자세는 이미 다문화사회 본궤도에 접어든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교훈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 이런 사자성어를 이 대목에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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