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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동상, 소통하는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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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동상, 소통하는 동상
  • 이규식
  • 승인 2018.07.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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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문화의 눈으로 보다’] <1>종각 건너편 전봉준 동상

여러분은 바쁜 일상 속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것들이 많은 삶을 살고 있지 않으십니까? 문학평론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이규식 교수가 소소한 것들에 숨어 있는 문화 현상, 거리를 거닐고 여행하며 바라본 것들, 사람들의 생활습관, 매너와 에티켓 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필자 이규식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남대 교수(프랑스어문학전공)로 재직 중입니다. 대전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대전시 도시디자인위원,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달의 책 선정위원장, 외교부 시니어 공공외교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편집자 주>

이규식 문학평론가 | 칼럼니스트

동상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이념의 아이콘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선진 여러 나라에서도 곳곳에 동상을 세워 교훈과 교육, 국민공동체 의식 함양 또는 이런저런 특정 목적으로 활용한다.

우리도 예전에 충무공, 세종대왕 같은 위인 동상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이즈음에는 새롭게 조명받는 역사 인물, 문인과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형상이 삶의 주변 가까이에서 무언의 교감을 이루게 한다.

오래전에 조성한 동상 대부분은 높다란 대석 위에 설치되어 범접하기 어려운 위용과 거리감을 주고 있지만 근래에 이르러 눈높이로 친근하게 보도 바로 옆에 위치하여 생시의 모습으로, 행인들과 낮고 가까운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동상 대중화 시대, 민주화 시대는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왔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 24일, 순국 123주년 기념일에 종로 종각 건너편 영풍문고 앞 길가에 세워진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 동상은 특히 건립 위치나 인물의 형상에서 종래 획일적인 위인 동상의 범위를 벗어난다.

종로 종각 건너편 영풍문고 앞 길가에 세워진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눈높이로 친근하게 보도 바로 옆에 위치하여 생시의 모습으로, 행인들과 낮고 가까운 자리에서 마주하고 있다. 동상 대중화 시대, 민주화 시대를 대변하는 듯하다.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

- 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부분

1984년 안도현 시인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전북지방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군의 봉기는 조선 말기 기울어가는 왕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민중의 함성이었다. 비록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그 중심에 선 녹두장군의 압송과정이 세밀하게, 과감하게 묘사되면서 그날의 함성이 귀에 들리는 듯 생동감을 준다.

동학 농민군은 고부군수 조병갑으로 대표되는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실정, 폐정, 적폐를 바로잡을 것을 요구했다. 농민통치기구인 집강소에서 개혁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의 침략음모에 저항하여 전면 재봉기하였다.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 패퇴하고 녹두장군 전봉준은 압송되어 서울 전옥서에 투옥, 요식적인 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이튿날인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 형이 집행되어 마흔 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당시 역사의 세밀한 고증에 앞서 전봉준 장군 동상에 형상화된 마지막 모습이 이 모든 과정과 결과 그리고 동학혁명의 의미까지도 집약하여 보여준다. 자그마한 체구에 꿰뜷어 보는듯한 형형하기 그지없는 눈빛, 그리고 저항의 자존심이 묻어나는 앉은 자세…. 모든 시각적 요소에서 ‘동학’, ‘전봉준’ 그리고 미완의 시민혁명 같은 여러 개념이 구체적으로, 더러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종각 건너편 전봉준 동상의 두상 부분 디테일.

인근 교보문고 앞길에 세워진 소설가 횡보 염상섭(1987-1963) 선생 동상은 벤치에 앉아있는 형상이다. 독특한 개성을 지녔던 작가의 포즈가 친근감을 준다.

서울 중구에는 만담가 장소팔(1923-2002) 선생 동상이 역시 눈높이 위치에서 오가는 대중과 눈길을 마주치고 있다. 입매와 표정이 재익살스러운 만담 한마디를 풀어놓을 듯한 분위기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인물의 핵심 이미지를 강력하게 부각시킨 이즈음 여러 동상에서 새로운 문화의 숨결, 근엄하고 마냥 존경심만을 자아내게 하는 대신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선현들, 대중예술인들의 숨결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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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세상 2018-07-19 12:1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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