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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00주년 부강초, 한 세기 역사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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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00주년 부강초, 한 세기 역사를 돌아보다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7.09.30 13:4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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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기금 모아 주민들이 세운 학교, 최근 영화 <박열>로 다시 주목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세종시 부강초등학교. 왼쪽이 현재 모습, 오른쪽이 1970년대 초 아침 조회 풍경이다.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백마고지 전투 영웅 김종오 장군, 기적의 볍씨 ‘통일벼’ 개량에 성공한 최현옥 농학박사, 열사 박열의 동지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세종시 부강초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

부강초등학교(교장 민방식)가 1일 개교 100주년을 맞아 뜻깊은 기념식을 개최한다.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한 세기를 향한 도약을 선포하는 자리다.

이날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준비한 합창과 사물놀이 공연을 시작으로 명예졸업장과 감사패 수여식, 기념비 제막식이 진행된다. 부강초 동문회(회장 이정우)는 교내 곳곳에 옛 학교 모습이 담긴 사진을 전시하고, 학생들이 손수 그린 축하 그림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역 역사와 함께한 학교, 옛 강당 그대로 보존

1926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옛 부강초 강당. 현재는 시 지정문화재 제5호로 보존되고 있다.

옛 충북 청원군에 속했던 세종시 부강면은 마을 이름 그대로 부강(富強)한 마을이었다. 삼국시대 때부터 당나라 상인들은 나룻배를 타고 이곳 부강으로 넘어왔고, 조선시대 후기에는 하루 7000~8000명의 상인들이 다녀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부강'이라는 명칭은 고구려 장군 연개소문이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가 백제와 신라를 공략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연개소문이 강 건너에 피어 있는 꽃의 이름을 물자 신하가 ‘부용화(芙蓉花)’라 답했고, 이후 이 일대를 부강면(芙江面)이라 부르게 됐다. 부강면 노고봉 산 꼭대기에는 옛 고구려의 성터와 표석이 남아있다. 

민방식 교장은 “1910년 한일합방 이전 이미 헌병대가 현재의 부강파출소 건물에 있었고, 한일합방 후에는 파출소가 생겼다”며 “이 작은 마을에 군과 경찰이 모두 주둔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 부강은 상업이 크게 발달한 곳이었다. 일찍부터 돈벌이가 되는 지역이었던 것. 역사적으로도 부자가 많은 동네로 유명했고, 학력 수준이 높아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도 많았다.

민 교장은 “1회 졸업생인 임창호 동문은 현 한화생명의 전신인 대한프라스틱 공업 주식회사를 창설한 분이고, 백마고지 전투 영웅 김종오 장군과 통일벼 생산으로 식량 문제 해결에 앞장선 최현옥 박사도 부강초 출신”이라며 “각계각층의 졸업생들이 우리나라 발전에 헌신해왔다”고 했다.

세종시 학교 중 유일하게 근대 건축물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특별하다. 1926년 지어진 부강초 강당은 건설 당시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건축됐으며 시 지정유형문화재 제5호로 보존되고 있다.

민 교장은 “학구열이 높았던 부강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 학교 건물을 지었고, 학교 터 역시 기부받은 땅”이라며 “100년이 된 지금도 주민들의 애정, 동문들의 애향심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네코 후미코 졸업한 ‘심상소학교’, 부강초 전신

부강초의 전신인 부강공립심상소학교를 졸업한 가네코 후미코(왼쪽)와 남아있는 학적부(오른쪽). (사진=부강초)

실화를 토대로한 영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에서 건너와 이곳 부강에서 6년 간 학창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이긴 하지만, 일제강점기 애국지사 박열 의사와 항일 투쟁을 함께한 동지이자 부인이다.

그는 부용면 부강리에 살던 고모부의 양녀로 자랐다. 현 부강초 전신인 부강공립심상소학교 4학년으로 입학, 1917년 2년제 부강고등소학교까지 졸업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총 6년 간을 이곳 부강에서 보낸 셈. 현재 부강초에는 그의 학적부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부강면 주민들은 일본인의 탄압을 크게 받았다고 알려져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일본인 고리대금업자가 출몰했고, 조선인 착취가 심했기 때문. 

가네코 여사의 고모부 역시 고리대금업자로 이름을 날렸는데, 이는 곧 심상소학교 인가 연도인 1908년이 부강초 역사의 시작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심상소학교는 전교생 15명 중 12명이 일본인 학생이었다.

민 교장은 “가네코는 양녀로 조선에 왔지만 식모같이 살면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주민들은 일본사람에게 치를 떨 만큼 고통을 받았다”며 “이런 역사들은 가네코의 수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징용과 정신대 등 일제 탄압을 받았던 역사 때문에 아직도 그 정서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부강초의 역사는 1908년 심상소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역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일제 탄압의 잔재로 주민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학교폭력 ‘제로’ 학교, 동문회 장학재단 설립 움직임

부강초 민방식 교장. 그는 지난 2012년 부강초 교감을 지낸 뒤 2015년 9월 1일자로 부강초 교장으로 부임했다. 

부강초는 지난해 학교폭력 제로 학교로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교육청 개청 후 학교 폭력 사건이 단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

민방식 교장은 “아름다운 학교로 선정될만큼 자연환경이 전원적이고 매일 ‘사랑합니다’라는 등교 인사를 주고 받는 학교 문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모두가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랜 역사만큼 동문회도 끈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동문회기금으로 장학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

민 교장은 “동문회에서 장학법인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며 “과거 주민들이 만들고 가꾼 학교였던 만큼 동문들의 애향심도 남다르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백년지대계를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내 곳곳에는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 추억의 사진 등이 전시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전 부용면장이었던 이규상 향토사학자가 부강초 100년 역사를 낭독한다.

부강초 동문회에서 세운 개교 100주년 기념비.
1923년 학교 증축 후 찍은 기념사진. 당시 학교 증축은 학부모들의 기금을 모아 진행됐다. 사진 속 인물 절반 이상이 학부모들이다. (사진=부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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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사람 2017-10-01 14:18:34
박열영화에서 인상적이었는데 가네코 후미코가 부강초를 나왔군요. 첨 알았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마음은한가 2017-09-30 17:41:50
세종시에 100년 학교가 있었군요. 역사가 있는 학교 100주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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