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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Now & Here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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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Now & Here 545'
  • 김항중
  • 승인 2016.06.2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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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중의 365 아침 행복 편지]

관용(寬容) : [명사]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 또는 그런 용서.
                 [유의어] 아량, 용서, 포용
                 [영어] tolerance, generosity, magnanimity


사람들은 보통 프랑스 사회를 ‘똘레랑스(tolerance)가 있는 사회’라고 합니다. 똘레랑스라는 의미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가리킵니다.


즉,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을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똘레랑스의 출발점입니다. 나와 남 사이의 관계 또는 다수와 소수 사이의 관계에서 나와 남을 동시에 존중하고 포용하는 내용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관용’을 뜻합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갈등과 다툼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은 저만이 아니겠지요?


일상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해주는 신문 방송도 거의 대부분 관용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 주를 이룹니다. 과연 우리 사회를 ‘관용의 사회’로 탈바꿈 시킬 수 없을까요? 그 관용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관용에 대한 가르침은 역시 자비로운 가정에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각 가정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관용의 경험이 몸에 배게 되어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자연스레 관용이 생길 것 같습니다.


‘관용’에 대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자기증오’가 있으면 절대로 관용적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관용’의 경험에서만 ‘자기증오’를 예방하고 해독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아무리 똑똑하고 예리한 통찰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관용의 뒷받침이 없으면 기껏해야 지적일 뿐입니다.


인간성에는 정서적인 양식 중 하나인 ‘관용’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가정에서부터 가족들 간에 관용을 베푸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학교에서도 교사와 학생 간, 또래 친구들 간에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노력 또한 필요하겠지요. 


나와 상대에 대해서 조금만 기준을 낮추고 기대치를 줄이면서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면 자기증오를 방지할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내적인 평화와 새로운 힘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좀 더 자비로운 마음,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내심이 어떨지요?
 
2016. 5. 26
행복포터
김항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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