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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시집, '현대'라는 책꽂이에 꽂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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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시집, '현대'라는 책꽂이에 꽂히다
  • 한지혜
  • 승인 2016.03.15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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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고전이 말끔한 모습으로 다시 재출간 됐을 때 사람들은 왠지 모를 허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는 다른 세련된 겉모습이 이질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자를 섞어 쓴 세로쓰기에다 빛바랜 느낌의 표지, 과거의 맞춤법까지 재현해 낸 복각본이 연달아 출간되고 있다. ‘시의 시대’가 다시금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소규모 1인 출판사 ‘소와다리’는 백석의 <사슴>,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초판 그대로 재현했다. 특히 시인 윤동주가 필사한 <사슴> 초판본은 1936년 당시 전통 양장제본으로 100부만 발간된 희귀본이다. 당대 시인들은 물론 현대 수집가들에게도 소장 1순위에 속한다. 이 시집은 예약 판매 하루 만에 2500권이 팔렸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역시 두 달 새 5만 부 넘게 팔렸다. 시인 타계 71주년, 영화 <동주> 개봉과 맞물려 코너까지 따로 마련될 정도다.


현재 복각본 시집의 주 소비층은 20~30대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경우(교보문고 기준) 20~30대는 전체 구매자의 70%에 이른다. 특히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구매한 시집 사진들을 공유하면서 자발적인 홍보도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침체됐던 시집 시장의 활기는 출판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경성우편국 봉투에 시집과 명동풍경 엽서, 우표를 함께 담아 ‘경성에서 온 소포’라는 콘셉트로 구성됐다. 보내는 이에 적힌 이름 역시 김소월의 본명인 ‘김정식’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1948년 초판본을 복간한 시집과 함께 윤동주 육필 원고철, 사진 등을 함께 담았다. 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재현해 독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표지뿐만이 아니다. 시 역시 세월을 그대로 담았다. 한자병기와 세로 읽기, 지금과는 사뭇 다른 맞춤법까지. 읽기에는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오히려 독자들의 소장 욕구는 상승하고 있다.


책은 단순히 읽기를 위한 ‘텍스트’를 넘어 보고 만지고 소장하는 ‘문화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물론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본질인 ‘읽기용’이 아닌 ‘소장용’으로 전락, 컬렉션의 한 소재로 변질됐다는 이유에서다. 출판사들이 일정한 판매 부수를 확보하기 위해 검증된 절판본에 매달리는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시도 인터넷으로 보는 시대,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전설적인 시인들의 작품이 100년을 거슬러 현대 독자들의 책꽂이에 꽂혔다. 과거의 작가와 현대의 독자들이 뜨거운 응답을 나누고 있는 것 자체로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모두 수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대단히 훌륭한 수집가라 하더라도 고가의 희귀초판본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초판 복각본을 통해 독자들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원본의 본질에 가까이 서게 됐다. 그리고 이 연결고리를 통해 시는 세월을 견뎌내고, 우리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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