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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 미만' 언론, 퇴출 피하는 세 가지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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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 미만' 언론, 퇴출 피하는 세 가지 꼼수
  • 이정환
  • 승인 2016.01.21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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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시평 | 언론의 자유를 다시 생각한다


신문법 개정, 인터넷신문 85% 등록취소 전망
표현의 자유 옥죄는 반 헌법적 발상의 현실화
‘득보다 실’ 신문시장 혼탁, 편법만 난무할 것


신문사 소유가 어마어마한 권력이던 시절이 있었다. 윤전기를 소유하고 있어야 신문사 등록을 할 수 있던 때도 있었고 1도1사로 신문사를 제한하던 시절도 있었다. 신문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 건 1987년 6월 항쟁 직후 언론기본법이 폐지되면서다. 누구나 쉽게 신문사를 만들 수 있고 등록할 수 있도록 헌법에 명문화됐다. 지난해 12월19일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개정된 신문법 시행령에 따르면 인터넷 신문으로 등록하려면 5명 이상 상시 고용을 입증해야 한다. 도대체 신문을 만드는 데 사람 수가 중요한가. 5명 이상이면 신문이고 4명이면 신문이 아닌가. 심지어 이 조항은 소급 적용을 해서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5명이 안 되는 언론사들은 등록을 취소하게 된다. 인터넷기자협회는 올해 12월이면 6000여개의 인터넷 신문 가운데 85% 정도가 등록이 취소될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 황당무계한 법 개정에는 광고주협회와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의 농간이 있었다. 신문이 너무 많아서 광고 챙겨주기 힘들다는 기업 홍보팀 관계자의 하소연이 계속됐고 몇몇 신문사들이 그럼 우리가 손을 봐주겠다며 나서서 정치권을 압박해 만든 게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반 헌법적 발상이었지만 시행령만 고치는 거라 국회 논의도 없이 국무회의 의결로 통과됐다.


6000여개의 인터넷 신문 가운데 광고를 뜯어내려 기업을 협박하는 언론사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5명 미만의 언론사 가운데서도 작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도 충분히 많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고 기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정부가 재갈을 물려서는 안 된다. 광고주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비판 언론을 압박하는 것은 더더욱 문제다. 위헌 소지도 다분하다.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은 위헌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들은 개정된 신문법 시행령에 맞춰 신문 등록이 취소된 언론사들을 검색 결과에서 배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제휴를 맺어야 검색을 해주는 한국적 상황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만 언론사 입장에서는 검색 배제는 사실상 퇴출 선고나 다름없다. 벌써부터 군소 언론사들 사이에서는 5명 미만 퇴출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몇 가지 꼼수가 거론되고 있다.


첫째. 상시 고용을 입증하려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산재보험 가운데 한 가지 이상 가입 내역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월 60시간 미만 근무는 4대 보험 가입 의무가 없기 때문에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은 지역가입으로 두고 몇 천원 수준의 산재보험에 가입시켜 직원으로 등록하는 방법이다. 사진이나 편집 등 파트타임 직원을 직원으로 등록하거나 전업주부나 주변의 실업자들을 유령 직원으로 등록하는 편법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인터넷 신문을 포기하고 월간지나 계간지로 등록하는 꼼수도 가능하다. 이번에 개정된 신문법 시행령 조항은 인터넷신문 등록 기준이다. 아예 인터넷신문 등록을 포기하고 월간이나 격월간, 계간지, 연간지로 등록하는 방법이 있다. 계간지로 1년에 네 번, 몇 페이지 조금 찍어서 뿌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대안이 거론된다. 어차피 정기간행물이니까 언론사 역할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고 인터넷 홈페이지는 하던 대로 계속 운영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셋째. 큰 신문사의 지사나 지역판으로 들어가는 꼼수도 거론된다. 일부 서울 소재 언론사들이 지역본부를 돈을 받고 파는 관행도 있었다. 이를 테면 군 단위의 ○○신문이 도 단위의 □□일보의 지역판으로 들어간다든가, 그 지역에 주재기자가 진출해 있지 않은 신문의 지사로 들어가되 홈페이지는 제목만 바꿔 그대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본사 입장에서는 광고 수익을 배분 받거나 기사 공급도 받을 수 있어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퇴출 대상이 된 신문사 입장에서는 당장 등록된 신문이 아니란 이유로 취재 제한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고 사이비 언론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가 신문을 허가하던 ‘쌍팔년도’ 이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퇴출 대상 신문사들 상당수가 지역신문들인데 이 가운데는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풀뿌리 언론도 많다. 이 언론사들이 이런 황당한 규제로 문을 닫거나 최소한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건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결과적으로 5명 미만 퇴출이라는 조건은 사이비 언론을 퇴출시키지 못할 뿐더러 신문 시장을 더 혼탁하게 만들고 편법이 난무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5명 미만 퇴출과 무관한 상당수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단 한 사람이 만들더라도 언론은 언론이다. 시끄럽고 지저분하더라도 언론의 자유는 포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유사언론을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기득권 언론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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