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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精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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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精讀)’의 힘
  • 김재중 편집국장
  • 승인 2015.12.14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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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스트> 지면신문 재발행에 부쳐

<세종포스트>가 이번 주부터 종이신문을 다시 발행했다. 어떤 이는 이야기한다. ‘종이신문에서 손을 떼고 온라인뉴스를 통해 이슈파이팅을 잘해나가더니, 왜 다시 어려운 길을 걸으려 하느냐’고. 또 다른 이는 의구심을 표한다. ‘종이신문의 시대는 이미 끝난 것 아니냐’고.


일견 타당한 이야기들이다. 포털과 SNS가 뉴스플랫폼의 왕좌를 놓고 힘을 겨루는 ‘초(超) 디지털 시대’에 ‘종이신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단언컨대 미련 때문은 아니다. ‘정독(精讀)’의 힘을 믿을 뿐이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는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읽을거리(텍스트)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접하고 있을까. 그 많은 텍스트 중에 우리가 ‘읽는 것’은 무엇이고, 그냥 스쳐 지나듯 ‘보는 것’은 무엇일까.


십오륙 년, 중앙과 변방의 미디어 언저리에서 신문산업의 몰락을 함께 목격해 온 동료들과 ‘신문의 미래’에 대해서 수많은 논쟁을 벌였다. 결론은 늘 한 쪽으로 귀결되곤 했다. ‘신문산업은 망한다’라고.


산업이, 기업이 망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돈을 벌어 구성원들을 먹여 살리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신문산업이 레드오션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휘발유처럼 ‘훅’ 증발해버리고 마는 콘텐츠가 과연 언제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사실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낚시기사를 양산하는 불량미디어(?)의 종사자들조차도 “포털과 SNS라는 폭주기관차에 그리 오랫동안 무임승차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 볼 정도다.


정독의 시대. 필자를 포함해 글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대다수 글쟁이들은 어쩌면 ‘정독의 시대’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사전적 의미의 ‘정독’은 글의 뜻을 새기면서 자세히 읽는 것을 말한다. 고뇌의 산물인 글이, 거기에 발품까지 더한 제대로 된 기사가 ‘정독’될 수 있다면, 과연 신문산업의 미래가 어둡다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질 낮은 기사를 양산하는 언론의 문제인지, ‘정독’하지 않는 독자의 문제인지를 따지는 것은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일부 온라인 뉴스의 저급한 기사 때문이라고 변명하거나, 자극적 제목장사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취향(?)이 문제라고 탓하고 싶진 않다.


<세종포스트>는 ‘정독의 시대’를 묵묵히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옹골진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에 없던 지사적 결의가 생긴 것도 아니다. 다만 ‘정독의 힘’을 믿을 따름이다.


‘정독’은 비단 언론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것. 글귀를 눈으로 해석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 또한 정독이다. 결국 ‘정독’은 소통의 자세를 의미한다. 내 이야기에 타인이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듯, 타인의 이야기에 나 또한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세종시에서 가장 필요한 미덕은 그런 의미에서 ‘정독’의 자세다. 자기주장을 분명하게 펼 줄 아는 30~40대 젊은 중산층들이 몰려들면서, 다양한 욕구를 분출시키고 있다. 특히 공익적 욕구가 다양한 방법으로 조직화되고,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재생산되고 때론 확장되면서 각종 ‘이슈’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만큼, 특정 사안을 거론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 공익적 욕구에 ‘정독의 미덕’이 결여돼 자기들만의 논리, 자기들만의 잔치로 귀결되는 사례들이 허다하다. 자신의 논리를 펴기 위해 법률과 행정사례들을 ‘정독’한 뒤 그럴싸한 무기를 만들어내지만, 정작 반대 의견을 경청하진 않는다. 자기만을 위한 ‘정독’에 매몰돼 가는 셈이다.


<세종포스트>도 마찬가지다. 서푼짜리 언론의 양심으로 시민들에게, 독자들에게 어설픈 논리를 강요하다가는 차가운 외면을 당할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신문 재발행은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의 의견을 ‘정독하겠다’는 <세종포스트>의 약속이자 스스로 ‘정독되기’를 바라는 ‘꿈’이기도 하다. ‘애독(愛讀)’은 그 다음에 꿈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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