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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할 또 하루,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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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할 또 하루, 11·13
  • 이병애 디트뉴스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5.11.18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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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애 칼럼]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면 지는 것


기억해야 할 날이 하루 더 늘었다. 11월 13일,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 파리가 끔찍한 테러를 당했다. 지난여름 한 달간 머물렀던 터라 골목골목이 아직 눈에 선한데, 1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말을 맞아 친구와 밥을 먹다가, 또는 모처럼 기다려온 록 공연을 보러왔다가 영문도 모른 채 공포 속에서 총을 맞고 죽었다. 하마터면 축구를 보던 사람들까지도 무수히 희생될 뻔 했다.


▲이병애 | 객원논설위원

불과 10개월 전,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에 대한 테러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무슬림을 모욕하는 만평을 실었다는 특정 행위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었지 이렇게 시민들의 일상의 삶 자체가 공격의 대상은 아니었다. 우리가 파리를 동경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아직 구호일 뿐인 ‘저녁이 있는 삶’을 파리 사람들은 구가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저녁의 삶이 테러를 당한 것이다. 샤를리 엡도 테러는 다른 종교에 대한 명예 훼손과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의 대립이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이번 테러는 일상의 자유와 삶의 기쁨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위협한 것이어서 어떤 이유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테러범의 말대로라면 프랑스의 시리아 공습 참여에 대한 보복이었다지만 야만적인 광기가 빚은 대참사일 뿐이다.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이 와중에도 감동적인 것은 죽은 사람들 속에서 죽은 체하고 있다가 살아남은 22살 젊은 처녀가 남긴 말이다. 자신이 그러했듯이 죽어간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총구를 겨누는 짐승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였으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람들 안에 있는 선을 계속 믿음으로써 저 짐승들이 이기도록 놔두지 말아달라고 소망했다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이번 테러로 인해 오래 동안 프랑스 사회가 키워온 관용의 정신이 후퇴하는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의 광기가 무슬림에 대한 혐오를 낳고 혐오가 배척을 낳고 평범하고 무관한 무슬림들마저 고립시킨다면, 그리하여 고립된 무슬림들이 테러 세력에게 유혹된다면 저들의 세력은 오히려 더욱 커질 것이다. 결국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면 지는 것이다.


이제 파리의 시민들은 힘겹지만 일상의 리듬을 되찾아가면서 슬픔으로 연대할 수 있기 바란다. 우리나라가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을 겪고도 슬픔으로 연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이 조장된 것은 더욱 슬픈 일이었다. 다행히 파리 테러를 겪은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하나 고민하며 부모들과 교사들이 지혜를 모으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테러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것, 그것이 테러를 이겨내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상의 자유와 소소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이제는 용감한 일이 되었다.

이병애(시사칼럼니스트, 서울대 문학박사, 서울대한국외대 등 강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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