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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금주의’ 기괴함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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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금주의’ 기괴함의 시대
  • 송전(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공연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14.06.18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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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읽기 |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송전 교수
송전 교수

8번 결혼 끝에 석유재벌 남편 만난 노부인

17살 때 ‘친권’ 거부한 남친 복수 위해 귀향

재판결과 뒤집은 술 한 병 매수행위가 발단

가치혼란 시대 방향 찾으려면 원칙 지켜야

최근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라이문드 씨어터(Raimund Theater)에서 열린 뮤지컬 '노부인의 방문' 포스터 ⓒVBW
최근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라이문드 씨어터(Raimund Theater)에서 열린 뮤지컬 '노부인의 방문' 포스터 ⓒVBW

좋은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소통을 만들어낸다. 스위스의 독일어권 작가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이 그런 작품이다. 세상에 나온 지 거의 6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여전히 물욕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루한 인간의 실상을 고발하는 세계 곳곳의 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이다.

한때 제법 잘 나갔지만 지금은 경쟁에서 밀려나 퇴락의 길을 걷고 있는 한 도시에 어느 날 억만장자의 60대 노부인이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무리들을 대거 이끌고 귀향한다. 시신을 담는 관(棺)을 떠멘 대열 중에는 거세당하고 장님이 된 한때 극악했던 악당 한 쌍이 애완견처럼 끼어있다. 노부인은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홀로 목숨을 구했지만 머리와 심장만 온전할 뿐 온몸이 인공관절로 움직여지는 터다.

그녀는 시장 이하 전 시민들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그녀가 베풀 것으로 기대되는 돈 잔치 김칫국을 마신 탓이다. ‘구정물’이라는 단어를 연상케 하는 ‘귈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도시 시민들의 기대에 합당하게, 노부인은 고향에 십억을 내어 놓겠다고 선언한다. 시민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그 조건을 듣는 순간 모두 입을 닫는다. 미완의 정의(正義)를 위해 자신의 불량소녀 시절 남자 친구의 목숨을 내어 놓으라는 것이다.

온 시민은 돈을 위해 공동체의 일원을 희생시킬 수 없다며 인도주의의 도시 귈렌의 명예를 지키겠노라고 일치된 분노의 음성으로 거부를 외친다. 노 여인은 반응 없이 기다린다. 문제의 남자는 시민들의 인도주의적·이성적 연대의식에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이런 조건 제시에는 과거사가 작용하고 있었다. 노부인은 17살 때 19세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친권을 부정했다. 소녀는 이를 인정받기 위해 재판까지 갔지만 남자친구는 술 한 병으로 증인을 매수하여 소송에서 이겼다. 소녀는 불명예를 안고 고향을 떠났다. 그 후 소녀는 생존을 위해 창녀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8번의 결혼 끝에 석유재벌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이 앞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자 남편의 모든 재산을 차지한 후 삶의 말년 누더기가 된 몸을 이끌고 까마득한 젊은 시절 사랑의 배신에 대한 복수를 위해 고향을 찾았던 것이다.

돈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했던 그 시점 이후 시민들의 삶은 이상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문제의 남자가 경영하는 슈퍼마켓에 시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찾아와 남자를 격려하며 연대감을 표시하곤 당연하다는 듯이 값비싼 생필품을 외상으로 가져간다. 그 뿐 아니다. 모든 시민이 그간 못 누리던 온갖 사치를 외상으로 향유하기 시작한다. 이런 변모의 대열에 남자의 가족들까지 동참한다. 아내는 값비싼 모피를 온몸에 휘감고 아들은 스포츠카를 빚으로 사서 놀러 다니고, 딸은 고급 옷을 사 입고 골프 연습을 시작한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wikimedia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wikimedia

어느 날 남자의 절친인 시장은, 남자가 알아서 결심하라는 듯, 슈퍼에 총탄이 장전 된 사냥총을 놓아두고 떠난다. 남자는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여 도피를 시도한다. 은밀히 기차를 타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시민들이 떼로 나타나 어딜 가느냐고 묻는다. 남자는 감히 기차에 오르지 못한다. 남자는 비로소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남자는 이제 ‘방콕’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남자는 마을 회의에 초대된다. 회의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길게 도열한 좁은 길을 만든다. 그 가운데를 남자가 걸어간다. 서서히 길이 남자를 중심으로 좁혀져 원을 만들었다가 이윽고 풀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자는 쓸쓸히 얼굴을 처박고 죽어 누워있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익명성의 집단살인행위였지만 의사는 ‘행복에 겨운’ 심장마비라는 판정을 내린다. 그 다음날 노부인은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몇 십억의 도시 발전기금을 내어 놓고 젊은 시절의 애인 시신을 값비싼 관에 정성스럽게 담아 그의 웅장한 능(陵)이 준비되어있는 카프리 섬으로 향한다.

매우 선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무시무시한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엉켜있으며 넓은 치마 밑에 야수들이 이빨을 갈고 있는 모습은 불일치한 배합이다. 이런 배합을 ‘그로테스크(기괴)’하다고 말한다. 이 작품의 각 장면들이 기괴함으로 채워져 있다. 관객은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복잡한 구조 안에서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현대사회가 일으키는 ‘희비극’이 갖는 ‘그로테스크’의 양상이다. 노부인이 돈을 이용해서 많은 인간으로 하여금 비루한 범죄를 벌이게 하여 이룬 죄의 징벌은 정의의 실현인가? 노부인이 떠난 곳에 웃음이 낭자하다. 그녀의 돈이 귈렌의 시민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까?

귈렌 시민의 배금주의적 집단범죄를 유발한 원인은 불량소녀에 대한 첫 재판에 이뤄졌던, 정의(正義)를 뒤집었던 술 한 병으로 이뤄진 작은 매수 행위였다. 가치 혼란의 시대에 방향을 제대로 찾는 방법은, 심히 어려운 일이지만, 매순간 기본원칙에 충실 하는 것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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