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교육이야말로 ‘첨예’한 정치적 문제
상태바
교육이야말로 ‘첨예’한 정치적 문제
  • 박권일(시사칼럼니스트, 88만원 세대 공저자)
  • 승인 2014.07.22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수의견 | 교육감 선거

교육감선거, 정말 깨끗하게 치러지나

중립성 논리는 교육계 지분확보 수단

중요한 건 중립성 아닌 공공성 확보

박권일 시사칼럼니스트
박권일 시사칼럼니스트

지방선거가 점입가경이다. 후보 간 상호비방은 ‘애교’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기사도 속출한다. 세종시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새누리당 당원들과 시장후보, 교육감 후보가 참석한 ‘폭탄주 술판’이 <세종포스트> 보도로 알려지면서 큰 후폭풍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선거시즌이 다가오면 언론을 욕하기 바쁘다. 요즘은 "기레기"란 말이 대세다. 물론 대한민국 언론의 경마중계식 판세보도와 ‘신상털이’는 환멸스럽다. 하지만 그런 언론을 비난하는 것도 환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전자는 한없이 혐오에 가까운 환멸인 반면, 후자는 한없이 공허에 가까운 환멸일 뿐이다. 정책이슈를 아무리 공들여 보도해도 유권자들은 거의 읽지 않는다. 한편 자극적인 스캔들이나 갈등을 조장하는 선정적인 보도는 조회수가 폭발한다. 기자들도, 그리고 독자들도 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조금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지방선거, 그중에서도 교육감 선거제도에 관해서다. 한국은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이 분리되어 있지만 많은 국가에서는 통합되어 있다. 그리고 선거가 아니라 임명제가 많다.

영국의 경우 한국의 교육감에 해당하는 직책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임명하는 교육국장(director of children’s service)이다.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한 나라여서 30개 아카데미(Academie)의 교육청장(Recteur)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독일에서는 16개 연방주의 주지사가 각각의 교양문화부장관(Minister fur Kultur und Bildung)을 임명한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선거를 하는 곳도 있고, 임명하는 곳도 있다. 교육선진국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경우, 교육정책의 개발과 입안, 재원의 확보 및 분배는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지자체장에게 임명된 교육국 국장과 교육문화서비스국 국장이 교육행정을 실제로 수행하는 구조다.

과거 교육감 직선제 도입 당시에 정당과 지자체는 다른 선진국처럼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을 통합하거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계는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들어 격렬하게 반대했다. 확실히 우리 헌법 제31조 4항에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어쨌든 교육계 주장대로 교육감 후보는 ‘개인’으로 출마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육감 선거는 다른 선거보다 훨씬 깨끗하게 치러졌고, 치러지고 있을까? 천만에. 선거 때만 되면 온갖 부정과 구태가 판을 쳤다. 누가 봐도 특정 정당의 지원을 받고 그 당의 정치 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 개인자격으로 출마한다고 해서 없던 정치적 중립성이 갑자기 생겨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교육관련 정책을 실제로 생산하고 입법하는 국회가 헌법 31조 4항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에 의해 규율되는 것도 아니다. 이쯤 되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논리는 그저 ‘교육계의 지분확보’ 기능만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의 어떤 이들은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려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한 이야기다. 마치 정치적 중립성이 공공성의 필요조건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공공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시민안전을 수익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피터지게 주장하고 싸워온 민주노총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가?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그들만큼 공공성을 오랫동안 옹호해온 이들이 있는가?

말할 것도 없는 얘기지만 전교조가 친북세력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마타도어다. 그런데 전교조 교사들 스스로도 극우세력의 공격에 공세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진보진영 스스로 ‘교육은 곧 성역’이라는 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정치중립성이란 건 사실 사이비 논점이다. 세상에 정치적 중립이 어디 있나. 교육이야말로 다른 어떤 사안보다 첨예하고 살벌한 ‘정치적 문제’가 아닌가. 정말로 숙고해야하는 것은 껍데기만 남은 정치적 중립 따위가 아니라 교육의 공공성이다. 그리고 이 공공성은, 일정 수준의 독립성을 확보한단 전제 하에, 실체가 있는 정치세력과 명시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가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교육감이 개인 자격이어서는 정치적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도 없다. 교육의 공공성은 교육행정의 독립성, 일관성, 책임성을 통해서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