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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초유연근로제’는 조삼모사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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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초유연근로제’는 조삼모사의 끝
  • 박권일(시사칼럼니스트)
  • 승인 2014.07.22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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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 이명박-박근혜의 일자리 정책

대졸초임 삭감사태는 청와대와 재계의 공모

일자리창출 약속 불구 관련예산 38% 감축

‘고용률 70%’ 맞추려 초단기 일자리만 늘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공통점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 심각한 게 바로 노동 및 일자리 정책의 조악성이다. 박근혜 정권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지난 이명박 정권을 돌아보자. 부정의하고 부조리한 행정이 쏟아져 나온 5년이었지만, 일자리와 관련해서 역사에 길이 남아 반면교사가 되어야 할 최악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09년의 대졸 초임삭감 사태다.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에 설명해두기로 한다.

전경련은 2009년 2월 25일, 30대 그룹 채용담당임원들이 참석한 ‘고용안정을 위한 재계 대책회의’를 열어 대기업 신입사원 임금을 최대 28% 삭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공식적으로 "고용안정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며 일자리를 나누는 잡 셰어링(job sharing)"이라 명명됐다.

며칠 후 공기업 경영진들은 ‘신입사원 임금을 최대 30% 삭감할 것’이라 선언한다.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금융기관과 민간기업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한국에서 ‘인턴사원’은 풀타임 비정규직 노동자를 뜻한다. 전경련이 말하는 잡 셰어링이란 그러니까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신입사원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말이다. 빈민들 재산을 빼앗아 빈민을 구제하겠다는 발상과 다름없었다.

<머니투데이> 2009년 2월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1월 15일 열린 제2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을 안정시켜 실질적으로 고용을 늘리는 ‘잡 셰어링’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고 이 자리에서 "대졸신입사원의 초임을 낮추는 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고 한다. 한 달 남짓 지나 전경련의 발표가 나오게 된다.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청와대를 방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선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청와대를 방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선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한 마디로 대졸초임삭감 사태는 청와대와 재계의 공모였다. 경제위기를 기회로 취업을 앞둔 청년 세대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반면 노동자의 수백 배에 달하는 돈을 가져가는 임원진의 연봉삭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의 미래를 통째로 약탈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극단적 세대착취 사례였다.

이른바 이명박전경련 식 ‘잡 셰어링’의 결과는 참담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2010년에 무려 2000명의 인턴사원을 뽑았지만 이중 정규직이 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공기관의 신입 초임 평균연봉은 2770만원에서 2490만원으로 10.3% 하락했다. 반면 신규채용 인원은 같은 기간 22.5% 떨어졌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신입사원 임금을 깎았는데 신규채용 인원은 되레 줄어버렸다(‘대졸초임삭감 2년, 남은 건 ‘차별상처’ 뿐’, <레이버투데이>, 2011년 3월 28일).

박근혜 정권의 고용정책은 어떨까. 일자리 창출은 대선 출마 당시 박근혜 캠프의 3대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일자리 사업 예산을 관리하기 시작한 2009년과 2013년을 비교하면 고용창출 예산은 4조 7073억원에서 2조 9224억원으로 오히려 38% 가까이 줄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치상 취업자 수와 고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골적으로 ‘꼼수’를 쓰려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는 대신 초단기 일자리(당연히 비정규직이다)를 늘려 수치를 ‘뻥튀기’하는 것이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검토하고 있다는 ‘초유연근로제’가 박근혜 정권의 고용정책 기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초유연근로제란 고용보험, 연차휴가, 주휴수당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초단기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소리인데, 내용이 알려지자 당연히 노동계와 진보진영에서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원래 주 40시간짜리 일자리를 주 10시간짜리 초단기 일자리 네 개로 분리하면 고용률 자체는 네 배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된 일자리일 리 없다. 시간당 임금 역시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에서 형성될 것이다. 주 10시간짜리 일자리로 생활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을 리 없다.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숫자에 목을 매는 것은 스스로 내뱉은 "고용률 70% 로드맵" 때문이다. 즉, 70%라는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잡 셰어링’이 파렴치의 끝을 보여줬다면, 박근혜 정권의 ‘초유연근로제’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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