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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국가와 직접 대면하길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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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국가와 직접 대면하길 원할까
  • 박권일(88만원세대 공저자)
  • 승인 2014.07.22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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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 한국사회의 문제해결법
박권일

과거엔 국민소득 같은 경제적 부의 크기만을 가지고 일면적으로 선진국을 규정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지니계수 같은 분배의 평등성을 재는 수치들, 그리고 삶의 질을 여러 각도에서 계량화하는 지표들도 많이 개발되었다. 이런 '숫자'들을 가지고 '잘사는 사회'를 좀 더 세밀하게 정의하고 서로 비교해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수치로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어찌 보면 한국처럼 이미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풍요를 이룩한 사회에서는 수치화할 수 없는 측면이 더 중요하다. 개인이나 집단의 잠재력은 평온하게 모든 것이 잘 굴러가는 상황보다는 어떤 위기나 문제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개인이 겪는 고통들, 집단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결국 그 사회의 경제적 부유함 뿐 아니라 공교육의 수준, 역사적·문화적으로 축적된 경험칙과 암묵지(tacit Knowledge)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문제해결방법이 합리적일수록, 정교할수록, 그리고 다양할수록 구성원들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압도적으로 높은 자살률과 아찔하게 낮은 출산율. 외환위기 이후 15년 남짓의 기간 동안, 삶과 죽음의 직접적인 지표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드물게 비극적인 사회가 됐다. '먹고 살만한 나라들(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가장 지옥에 가까운 나라'라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불평등의 강화와 고착이라는 문제가 있다. 비정규·불안정노동의 확산으로 아무리 일해도 빈곤층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구조, 소득 불평등을 넘어선 자산 불평등의 심화 등 사회경제적 모순이 한국을 지옥으로 만든 주된 요인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이른바 선진자본주의 사회 중 그 나라 최대의 기업이 대놓고 무노조 경영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과 재벌이 변해야 하는데, 이들이 변하려면 사회평등을 더 잘 실현할 수 있게 하는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노동자-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강하게 뿌리내려야 한다.

선진자본주의 사회는 그렇게 발전해왔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의 문제해결법은 이런 방식과 사뭇 다르다. 촛불시위 같은 돌발적 저항이 격렬하게 끓어오르지만 정당과 제도를 매개로 한 사회변화에는 시큰둥하거나 냉소적이다. 한국인들의 시위문화를 보면 인민주권의 표상인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와 국민의 매개 없는 대면'을 갈망하는 이 정서는 봉건시대 성군에게 억울함을 직접 호소하고 위로받는 백성의 멘탈리티(물론 이것은 대개 후대에 각색된 서사이지만)와 지나치게 닮았다. 이런 방식의 저항과 호소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뿐더러 정치지도자로 하여금 국민과 직접 만나 고충을 듣고 그걸 곧바로 통치에 반영하는 식의 포퓰리즘적 이미지 정치에 경도되게 만든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문제를 개인적으로 해소(해결이 아니라)하려는 태도다.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억울하면 출세해라"이다. 개인이 겪은 부조리함을 사회적 차원에서 교정하지 않고(모난 돌이 정 맞으니까) 힘을 가질 때까지 인내하라는 이 처세술은 결과적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 악순환하면서 사회 전체의 동력과 비용을 소모하게 만든다.

또 하나 도드라진 문제해결방법은 연고주의 내지 가족주의다. 이는 "우리가 남이가?" 내지 "믿은 건 가족밖에 없다"로 표현된다. 이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뒷문을 통해 문제를 우회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도에 대한 불신, 사회 문제에 대한 개인적 해소는 한국사회의 특징적인 문제해결방법이다. 물론 개인 차원에서 이런 해결책이 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든 경우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 사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하나의 거대한 문화지체를 가져왔다는 생각이다.

국가, 기업, 종교가 아닌 다른 형태의 조직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주변 사람들을 조직하고 작당(作黨)하는 것보다는 어떤 '큰 타자'를 호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요즘의 멘토 열풍도 그런 경향의 연장선에 있다. 개인은 멘토에게 고통을 위로받고, 집단이 되면 국가와 직접 대면하려 한다. 그러나 거기에 사회적인 것, 그리고 정치적인 것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남은 건 영원한 각개약진의 지옥이다.

통합진보당 민병렬 최고위원이 지난해 8월 청와대 앞에서 국정원 대선공작 의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 민병렬 최고위원이 지난해 8월 청와대 앞에서 국정원 대선공작 의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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