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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실’에 대한 천만 관객의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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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실’에 대한 천만 관객의 지지
  • 황혜진(목원대 TV 영화학부 교수)
  • 승인 2016.05.26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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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사회 | ‘변호인’
영화 <변호인>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빨리 달려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본사회를 살아가면서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실, 그러나 여전히 가슴 한편을 시리게 하는 단순한 진실을 일깨움으로써 모순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빨리 달려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본사회를 살아가면서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실, 그러나 여전히 가슴 한편을 시리게 하는 단순한 진실을 일깨움으로써 모순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현실 연관성… ‘고 노 대통령 추모’ 해석은 옹졸
속물 변호사의 상식 짓밟힌 억압적 현실에 공감
객관적 사실 놓고 다양한 시각 소통하는 장 돼야


황혜진

<변호인>(양우석)이 지난 19일 밤 10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전야제 포함 개봉 33일만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2012)와 <아바타>(제임스 카메론, 2009)보다 5일 빠른 기록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삶을 참조했다는 점에서 개봉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던 것도 그러하거니와 일반적으로 영화관을 자주 찾지 않는 30~40대의 티켓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변호인>의 선전은 눈부시다.

<괴물>(봉준호, 2006), <해운대>(윤제균, 2009)와 같이 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실미도>(강우석,2003)나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2004)와 같이 민족주의적 감성에 호소하는 대형 액션도 아닌 이 영화가 1000만이 넘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임 시절의 공과를 따지기에 앞서 이 영화에 대한 지지가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하는 논리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더욱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실제가 아니라 각색된 것이니 만큼, 현실과의 직접적인 연관에서 <변호인>의 미덕을 찾는 것은 이 영화를 고 노무현 대통령을 찬양하는 영화라거나 종북 빨갱이 영화로 매도하는 옹졸한 해석만큼이나 현명하지 못하다.

고졸의 판사 출신 변호사 송우석은 부산에서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로 자리를 잡는다. 그에게 성공이란 가난했던 과거에서 벗어나는 것, 곧 정당한 수단으로 부를 쌓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신군부가 집권한 80년대 초를 압도했던 정치적 억압과 긴장은 그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 서울대생들의 시위 보도를 접한 술자리에서 기자인 동창의 울분을 치기로 내몰아 주먹다짐을 하면서도 그의 현실인식에는 흔들림이 없다.

세법 전문으로 변신해 승승장구하던 즈음, 10대 건설회사 중 하나로부터 채용 제의를 받은 우석의 삶은 세속적인 성공담으로 완성되어 가는 듯하다. 그의 변화는 단골 국밥집 아들이 용공으로 조작된 부림 사건에 휘말리면서부터 시작된다. 어려웠던 시절, 따뜻한 품을 내주었던 국밥집 아주머니에 대한 인간적인 정을 외면하지 못해 맡은 이 사건이 그를 1980년대 초, 한국의 가장 뜨거운 현실의 중심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 현장에는 국가가 독점한 물리력이 휘두르는 난폭하고 처참한 기록이 있다.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고문 장면을 통해 우석과 관객이 분노와 슬픔으로 연대하면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시간은 살아 숨 쉬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이 된다. 그리고 그 고통이 증거 하는 진실은 겁에 질린 모습으로 땅에 묻히는 듯 보이지만 우석이 변호를 맡은 다섯 번의 재판에 의해 혹독한 비상식의 벽을 뚫고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오랫동안 귓전을 맴도는 단순하지만 심장을 뛰게 하는 우석의 법정 대사가 있다. 우석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우위를 운운하는 고문 경찰에게 대한민국의 근본이 전적으로 국민에게 있다고 외친다. 헌법에 명시된 바, 그 당위성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우석의 외침이 마치 처음 접하는 일종의 선언처럼 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변호인>이 단순히 고 노무현 대통령을 미화하거나 과거사를 통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읽혀졌다면, 지금과 같은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속물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아가던 한 평범한 변호사가 자신이 믿고 있던 상식과 진심이 짓밟히는 억압적 현실에 눈 떠가는 과정, 그리고 때로는 격렬한 분노와 싸움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에 공감했을 것이다. 또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은 지금, 이곳을 고단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안에 스러져 있던 열망을 건드려 깨웠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법정은 정교한 법리들이 충돌하면서 가까스로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단순한 진실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장이 된다.

대중영화에는 현실의 모순을 영화라는 상상의 형식을 통해 해결하려는 대중의 욕망이 담겨져 있다. <변호인>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빨리 달려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본사회를 살아가면서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실, 그러나 여전히 가슴 한편을 시리게 하는 단순한 진실을 일깨움으로써 모순의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상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영화가 감동적인 영웅담만으로 소비되지 않고 사회라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소통하는 공론장의 역할까지 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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