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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조 발언 파장 | 난독(難讀)이 빚은 공포정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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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조 발언 파장 | 난독(難讀)이 빚은 공포정치 시대
  • 김재중 기자
  • 승인 2013.12.12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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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기자의 뉴스리뷰 | “발언의 진의가 무엇이냐”를 묻지 않는 정치
양승조 민주당 의원
양승조 민주당 의원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라는 무기로 공안통치와 유신통치를 했지만, 자신이 만든 무기에 의해 자신이 암살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텐데, 국정원이라는 무기로 신공안통치와 신유신통치로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국민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총체적인 난국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박근혜 대통령뿐이며, 오만과 독선, 불통을 벗어던지고 국민의 곁으로 다가오기 바랍니다."

양승조 의원이 지난 9일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했다는 문제의 발언 내용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양승조 의원이 대통령에 대해서 암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발언까지 하는 것은 언어 살인과 같다"며 "이것은 국기문란이고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튿날 새누리당은 양승조 의원과 "대통령 사퇴" 발언을 한 민주당 장하나 의원 등 2명의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출했다.

#1. 국어 시험

엉뚱한 발상이지만 양승조 의원의 발언을 예문으로 삼는 국어시험이 있다고 치자. ‘위 예문에서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적합한 것은?’ 이라는 시험문제가 출제됐다. 아래 두 가지 항목 중에서 어떤 것을 정답으로 선택해야만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처럼) 암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독선을 버리고 국민 곁으로 다가오라

아이러니한 일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번이 정답이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고, 발언의 당사자인 양승조 의원은 번이 정답이라고 항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적 선입견을 배제하고 정답을 선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에게 정답을 물어온다면? 솔직히 어렵지 않은 문제다. 양 의원의 발언은 전형적인 미괄식 화법이다. 강조하고 싶은 말은 제일 마지막에 나온다. 고로 정답은 번이다. 물론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돌린다.

#2. 정언 공생

매일 아침 열리는 정당의 최고위원 회의는 사실 한국 정치와 언론의 공생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수년 간 정치부 국회출입 기자로 일했던 기자의 눈으로 볼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원탁에 둘러앉은 최고위원들이 약 5분 정도의 발언을 이어갈 때, ‘정치부 2진’으로 불리는 젊은 기자들은 노트북을 펼쳐들고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발언 하나하나를 받아 적는다. ‘워딩한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그날 실제 보도되는 내용은 ‘정치부 데스크’가 선별한 가장 ‘센 발언’ 몇 줄 뿐이다. 정치인들도 언론이 앞 뒤 문맥 딱 자른 발췌로 발언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알지만, 워딩 자체를 재가공하지 않는 이상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어쨌든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싫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엔 청와대가 언론사의 정치부 데스크 역할을 했다. 양 의원 발언 중에서 "국정원이라는 무기로 신공안통치와 신유신통치로 박정희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국민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는 말만 발췌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를 "암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나오지도 않은 말로 재가공했다. 재가공은 상업주의에 찌든 삼류 언론사도 금기시하는 행위다. ‘워딩’을 재가공했다가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난독증

난독증(難讀症). 사전적 의미로 ‘지능에는 이상이 없지만, 읽는 능력에 장애가 있어 글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증세’라 정의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난독증은 장애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부 ‘정치인’들의 난독 증세가 심상치 않다. 상대방의 언어적 표현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를 내거나 공격적 자세를 취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비판의 상대를 종북으로 몰아세우며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려 하거나 이번 일처럼 국회의원이라는 헌법적 신분까지 박탈하려 든다는 데 있다. 그야말로 난독이 빚은 공포정치의 시대다. 끝으로 실제 난독 장애를 앓고 계신 분들에게, 절대로 특정 장애를 폄훼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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