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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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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추나
  • 강수돌(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3.11.11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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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 삼성 A/S노동자의 자살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한 장면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한 장면

"그동안 삼성서비스(A/S)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 거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천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노동자의 유서 내용이다. 33세의 청년 노동자 최종범 씨는 첫돌배기 딸의 아빠이자 파릇파릇한 남편이었다. 그런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최 씨의 노동과정에서 센터 사장과의 일부 통화내용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고객의 불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센터 사장은 최 씨에게 전화상으로 "왜 새끼야 무릎 꿇고 빌게 만드냐? (고객과) ‘맞다이’ 까든지, 무릎 끓고 빌든지 둘 중에 하나 선택해!"라고 했다. 이에 최 씨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 직후 최씨는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는 최 씨가 일한 사업장의 노사관계로부터, 그리고 협력업체와 삼성재벌의 관계로부터 이번 사태의 뿌리를 더듬을 수 있다. 그것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나아가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일반적 상황이 상징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시민 항쟁’과 7~8월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많이 진전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경제적·사회적 민주화는 요원하다. 특히 재벌의 독점적 지위와 그 아래 종속적으로 편입된 하청 구조는 협력(하청)회사 사장들로 하여금 그 직원들을 ‘노예’처럼 취급하게 만든다. 이들은 오전 9시 이전에 출근해 밤 10~11시에 퇴근하기 일쑤다. 에어컨 실외기 고장 처리 서비스의 경우 4~5층 난간에 매달려 위험한 작업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7~9월 여름철에 업무가 밀렸던 시기에 받았다는 평균임금 4~500만원은 50만원 내외의 유류비, 그 정도 혹 그 이상의 자재비, 휴대전화 비용, 심지어 고객들이 낸다고 해놓고 내지 않은 수리비 미수금까지 포함한 것이라 순 수입은 200만 원 정도라 한다.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노동자라면 그런 상황에서 극심한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굴종을 강요하는 사장 앞에서 직원들은 저항이냐 포기냐 하는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한다. 최 씨의 경우, 그 선택은 죽음을 통한 저항으로 나타났다. 결국, 재벌의 독점적 지위와 그에 종속된 불평등한 하청 구조 자체가 타파되지 않고서는 최 씨와 같은 불행한 사태를 예방할 길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 짚을 점이 있다. 그것은 우리 일반 소비자들도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서비스 센터에서는 최 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매일 초를 다투며 일을 하고 있다. 성과 압박은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누적될 경우 우울증이나 직무 소진(번 아웃)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런데 일반 소비자들은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지도 않은 채 무조건 빨리 서비스를 해달라고 조르거나 불평불만을 과하게 토하기도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2주일 기다려도 될까 말까한 서비스를 한국에서는 1~2일 만에 해결하고 가는 경우가 많아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다. 우리가 이렇게 재빠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려면 노동자들은 얼마나 자신을 혹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우리 시민들도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자 서비스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 노동자들은 ‘고객 평가’ 결과에 따라 각종 인센티브를 차별적으로 받거나 심하게는 실직 위협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극단적 고객 평가 제도나 소비자의 조급증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지점이 바로 노동조합 문제이다. 원래 노사관계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집단적 관계로서 협력의 측면과 갈등의 측면을 포괄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 사이의 경쟁을 지양하기 위한 단결체로서 사용자 측인 경영진과 대등한 지위에서 신의와 성실의 자세로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조건 등 제반 이슈를 풀어나간다. 헌법 33조에서도 노동자의 단결권, 교섭권, 행동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노조는 안 된다"는 선친의 철학에 근거하여 삼성 재벌은 노동조합을 철저히 금기시한다. 물론 노조 설립을 위한 숱한 시도가 있었지만 철저히 사전 발각되어 싹도 뭉개졌거나 천신만고 끝에 노조 설립이 되어도 활동가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방해를 받았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조합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총 90명의 기사 중) 최 씨의 동료인 김기수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센터분회장은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7월 노조를 결성한 이후 사측이 8명의 노조원을 대상으로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특별감사를 하는 등 노조탄압에 들어갔다"고 했다. "갑자기 사측이 3년간의 자료를 수집해 데이터오류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해명을 못하면 금액을 차감"하는 등 "조합원을 집중대상으로 특별감사를 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노조 결성 이후 조합원 탈퇴 종용 및 표적감사 등이 거듭되면서 최 씨는 극심한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최 씨의 가족들은 그가 모르던 분야였지만 ‘울면서’ 공부해 마침내 삼성전자 기사가 되었을 때, 그가 ‘초일류기업 삼성’의 ‘정 직원’이 된 줄 알고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은 최 씨의 죽음 앞에 분노와 증오로 변했다. 이 고통과 상처를 치유해줄 약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재벌의 횡포를 타파하고 권위주의적 경영 방식을 혁신하며, 소비자의 권익만 주장하기보다 노동자의 권리도 존중하는, 실질적 경제 민주화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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