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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나들이! 반보기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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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나들이! 반보기 풍속
  • 정규호(전통장류명품화사업단 사무국장)
  • 승인 2012.09.17 0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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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결실을 기다리며......’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 오고 있으며 바야흐로 결혼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의 결혼은 예식과 함께 폐백을 올리며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시댁과 처가를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고 동료를 초대해서 집들이를 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전통혼례에 있어서는 '반보기' 풍속이 혼례의 절차로서 마지막이며, 이 는 끝이 없이 매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날 추석명절을 맞아 고향을 방문하여 부모님과 친지를 뵙는것 뿐만 아니라, 부모님께서 사돈어른께 전해드리라며 정갈하게 싸 주신 선물과 음식꾸러미와 함께 친정을 방문하는 것이 바로 '반보기' 풍속의 현대적 의미로 볼 수 있다.

▲ 반보기 풍경-결혼후 한가위 무렵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나들이를 가던 풍속

반보기는 혼례 후 출가외인이라 하여 친정나들이가 자유로울 수 없었던 전통사회에서 한가위 무렵,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동생 등 친정식구를 만나 서로 준비해 온 음식을 풀어 반나절을 함께 보내면서 애틋한 정을 나누었던 풍속이였다. 시집간 여자들이 친정 나들이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에 반보기 덕분에 한가위가 다가오면 친정부모님을 뵐 수 있는 설레임으로 시집살이로부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반보기는 원래 친정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친정집과 시댁의 절반쯤 되는 풍경 좋은 곳에서 만나 반나절만 함께 보내고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러한 의미로 반보기라 했으며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반보기는 모녀지간 뿐만 아니라 한 마을에 사는 여인들이 한가위 전후 해 날을 잡아 이웃 마을의 연인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이야기와 혼담 등을 주고받기도 하였다.

▲ 전통혼례-신행
▲ 전통혼례-대례

결혼은 가족을 구성하는 최초의 절차로서, 남녀 두 사람의 사회적·경제적인 결합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가족을 이룬다는 지위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두 가문(家門)의 결합이기도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혼례를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할 정도로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그 절차 또한 오늘날과 달리 복잡하였는데, 오늘날 전통혼례로 간주되는 유교식 혼례는 고려 후기 『가례(家禮)』에서 시작되어 한민족의 일생의례를 규정하는 규범으로 통하게 된다. 이에 따라 혼례는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이라는 네 개의 큰 의례로 이루어 졌다. 의혼은 혼인의 성사를 위해 혼담을 주고 받는 의례로 중매인을 통해 양가의 의사를 전달하고 혼인을 의논하는 절차였다. 의혼을 통해 혼인이 허락되면 "혼사(婚事)가 결정되었다"고 하여 중매 혼이라 하는데, 오늘날 신랑신부의 의사에 따르는 연애혼과는 사 못 다른 성격이였다. 의혼시 신랑집에서는 신부가 사는 마을에 친인척을 몰래 보내 신부의 인품이나, 학식 등을 마을사람들을 통해서 듣거나 집안을 방문하여 살피기도 하였다. 한편 신부집에서는 신랑 될 사람을 집으로 직접 초대하여 혼주가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인품이나 학식 등을 검증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의혼이 되면 납채의례가 진행되는데 이는 혼인을 받아들이는 것을 공식화하는 절차이다. 신랑집에서는 규정에 따라 사주단자와 함께 ‘청혼서(請婚書)’를 보낸다.

▲ 전통혼례-대례
▲ 전통혼례-초례청

청혼서를 받은 신부집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궁합을 보고, 혼인을 허락하는 허혼서(許婚書)와 함께 연길(涓吉)을 보냈다. 연길이란 ‘날 받이’라고도 하는데 혼인 날짜를 적은 단자를 말한다. 혼인날은 단순히 길일(吉日)만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신부의 생체리듬과 아들의 잉태가능성을 점치기 위해 신중을 기해 택일을 하였다. 납채의례가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혼례의례로 납폐가 이어진다. 납폐는 오늘날 흔히 '함'을 보내는 것이다

함은 혼인이 합의된 후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혼인서약을 상징하는 징표로 여러 가지 예단과 함께 혼수를 넣어 보냈다. 함이 도착하면 신부의 어머니가 받아서 상에 올려놓고 조상들에게 고(告)한 다음 함 안에 손을 넣어 처음 잡히는 물건을 꺼낸다. 보통은 붉은색 치마감이 나오는 것을 좋은 것으로 여겼다.

혼례식전에 이러한 의례가 마무리 되면 본격적인 혼례식이 이루어지는데, 오늘날 결혼식에 해당되는 의례이다. 먼저 혼례를 치르기 위해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는 것을 초행이라 하였다. 초행(初行)의 행렬은 청사초롱, 기럭아비, 신랑, 상객(上客), 그리고 후행(後行)으로 구성되었는데 상객은 주로 신랑의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 할아버지, 제일 큰형 등이 맡았다. 신랑의 행렬이 신부집 마을에 도착하면 일반적으로 인접(人接), 또는 대반(對盤)이라는 신부 측의 안내인이 나와 ‘사처방’ 혹은 주막이나 다른 집으로 신랑 행렬을 안내하는데, 이를 ‘정방’이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신랑은 사모관대로 갈아입고 때에 맞추어 신부집으로 간다. 신부집에 도착하여 대례에 앞서 전안례(奠雁禮)를 치르는데 신랑이 기러기를 바치고 혼인을 맹세하는 의례이다. 전안례는 백년해로를 하겠다는 의미로 목기러기를 몸 아래 위로 세 번 옮긴 후 전안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는 것으로 오늘날 결혼식에도 간간히 행해지기도 한다.

▲ 전통혼례- 전안례
▲ 전통혼례-홀기

이어 본격적인 혼인예식인 대례를 치른다. 대례의 첫 번째 절차는 교배례(交拜禮)로서 서로 절을 주고 받는 절차이다. 대례상에는 닭, 쌀, 용떡,팥,밤,대추,물 등을 차렸다. 교배례가 끝나면 합근례(合巹禮)를 행한다. 합근례는 둘로 나누어진 표주박으로 술을 서로 교환하여 마심으로써 하나가 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합근례를 마치면 들고 있던 닭을 날려 보내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원하였다. 대례가 끝나면 바로 신방으로 가서 초야를 치룬다. 이때 신방엿보기 등의 풍속이 행해졌는데 오늘날에도 해학적인 풍속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혼례식 당일 절차가 마무리 되면, 신랑집으로 가는 신행(新行), 시댁친인척에게 인사를 올리는 현구고례(見舅姑禮), 신행을 치룬 후 다시 신랑이 처가에 인사를 하러 가는 재행(再行), 혼인 후 일 년이 지나 친정에 인사를 가는 근친(謹親) 등의 의례가 이뤄 졌었다. 여기까지의 의례가 오늘날 결혼식 당일 또는 신혼여행을 다녀 와서 행하는 의례로 짧은 기간에 이뤄지지만 옛날에는 신행을 일 년 넘게 있다가 가기도 했기 때문에 혼례식을 치르고도 몇 년간 혼례의례는 지속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시집을 갔어도 친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풍성한 가을에 여러 가지 음식을 해서 '반보기'를 매 년 했었다.

오늘날 명절은 신세대 주부들에게 '명절중후군'이라는 병이 생길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때이다. 이를 보면 조상들의 옛 풍습을 보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반보기가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풍속 그 자체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명절 때 가장 바쁘고 힘든 여성들을 위한 세시풍속이 있었다는 것이 매우 지혜롭다라는 생각이 든다. 한가위를 앞두고 어머니들의 손길뿐만 아니라 모두가 분주한 때이다. 올 명절에는 반보기의 정신을 되돌아 보며, 명절때 고생하는 아내를 위한 멋진 친정나들이를 해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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