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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여인이 창밖으로 내다보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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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여인이 창밖으로 내다보는 그것
  • 송길룡
  • 승인 2012.09.10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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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여배우를 탐닉하다] 의 카트린 드뇌브


미용실에서 근무하는 젊은 여성 캐롤(카트린 드뇌브)이 일을 마치고 무료한 모습으로 거리를 걷는다. 하지만 그녀의 무료함은 다른 이들이 겉으로 볼 때의 모습일 뿐, 사실 그녀는 아무것에도 관심이나 흥미를 두지 않은 채 아무런 깊은 생각 없이 습관처럼 집을 향해 조용히 걷고 있는 것이다.

남성이 가지는 여성에 대한 호감이란 기묘하다. 생글거리며 웃으며 애교를 발산하는 여성의 적극성에 크게 이끌려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성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무표정한 여성의 데이트 거절에 기묘한 사랑의 오기가 생기기도 한다. 집앞에서 기다리던 캐롤의 남자친구는 남자친구라고 칭하는 것도 무색할 만큼 그녀에게서 그 흔한 저녁식사 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그녀를 혼자 집으로 들여보낸다. 하지만 데이트 요청 실패에도 캐롤에 대한 연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끈질기게 다가서려 마음을 다진다.

폴란드 출신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두 번째 영화 <혐오>(1965)는 남성에 대한 거부감이 혐오증 수준으로 발전한 한 여성의 자폐적 내면심리를 주목하며 그렇게 시작한다. 함께 사는 언니는 캐롤과 대조적으로 이성과의 만남에 적극적이다. 심지어 여동생이 듣거나 말거나 자기 침대로 남성을 데려와 시시때때로 정사를 벌일 정도다. 캐롤의 남성혐오에는 그런 언니의 역할이 증폭장치가 되는 듯하다.

일상의 평안을 주는 집에 있다 하더라도 캐롤은 일터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유희의 조언으로도 바꾸지 못할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런 그녀가 언뜻 창밖으로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있다. 건물 아래로 보이는 성당 마당 수녀들의 모습. 아마도 캐롤의 마음속에서는 혐오가 커질수록 순결에 대한 강박이 더욱 깊어져가는 것인지 모른다.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이 영화 <혐오>에서 내면의 욕구를 차단한 채 집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안에서 성적인 자기붕괴를 겪는 신경과민증 여성의 역할로 대단히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어떤 관계도 봉쇄하는 무표정한 표정과 이후 혐오가 뒤섞인 공포 속에 차츰차츰 무너져가며 보이는 파멸적인 표정이 오히려 관객에게는 자극적인 관능으로 다가선 모양이다.

카트린 드뇌브의 초창기 모습 중 옛날영화의 추억을 회상하기 좋게 만드는 <쉘부르의 우산>(자크 드미, 1964)을 다시 보며 그녀의 ‘청순미’를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같다. 더불어 <혐오> 이후 다시 한번 기묘한 관능미를 다시 선보이게 된 <세브린느>(루이스 부뉴엘, 1967) 역시 필수관람 추천을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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