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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 속에 숨은 사랑의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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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 속에 숨은 사랑의 교감
  • 송길룡
  • 승인 2016.05.26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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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영화의 한 장면 (2)] 소유와 무소유


"불 있어요?" 남자는 자신에게 뭔가 요청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뒤돌아본다. 그는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의 모텔방 열린 문에 기대서서 담배를 물고 예사롭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는 모습을 바라보며 책상서랍 속에 있는 성냥을 꺼내러 간다. 그는 줄곧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영화 <소유와 무소유>(하워드 혹스, 1944)에서 두 남녀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나중에 사랑에 빠져들 남녀 주인공이 서로 처음 맞대면하는 장면은 대개 연인들이 두고두고 기억하는 첫만남의 우연성과 설레임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관객에게 인상깊게 받아지도록 연출되기 마련이다. 영화는 보통 관객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마음에 품고 있을 첫만남의 환상을 이끌어내는 데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래야 관객이 자신의 풋풋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영화속 사랑을 따라가기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볼 <소유와 무소유>의 첫만남 장면은 좀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낚싯배 선장인 해리(험프리 보가트)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0년 친나치의 비시정부와 자유프랑스군이 충돌하는 프랑스의 한 지역 마르티니크에서 미국인이라는 제3자의 입장을 견지하며 해당 지역 정치상황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생계를 꾸려간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능력 좋은 미국인은 자신이 거주하는 타국에서 점령자에게든 저항자에게든 특별히 어느 쪽을 지지하지는 않으면서 돈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응해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일을 하는 데에 중요한 동기가 되는 돈은 마치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기나 한 듯이 말이다.

끈질기게 도움을 구하는 자유프랑스군의 접근을 냉정하게 물리치며 정치방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해리에게 뜻밖의 여인이 슬며시 다가온다. 뭔가 해리의 심경에 변화가 생길 것만 같은 상황에서 첫눈의 연인 사이에서나 기대될 법한 첫만남의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다. 마리(로렌 바콜)는 해리가 무심코 열어놓은 방문에서 유혹의 장난을 걸듯이 성냥을 달라고 말을 건넨다. 선남선녀의 표정에 압도된 바가 있기는 하지만 이 장면은 두 개의 대비되는 요청이 중첩되어 있다. 우연히 같은 모텔에 투숙한 어느 여인의 실없는 요청과 자유프랑스군의 절체절명의 요청. 화면 오른쪽 구석에 서있는 인물은 자유프랑스군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해리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러 온 모텔주인이다.

한편, 이 장면의 인물 배치는 해리의 입장에서 마리를 자신의 시야 안에 들여놓는 구도를 보이는데 남자의 마음을 떠보려는 듯이 요염한 시선을 던지는 마리의 표정이 화면 멀리서 매혹적으로 잡혀온다. 그녀는 해리의 이후 행동을 예의주시한다.

만일 이 장면에서 마리의 의도가 진정 유혹에 가까운 것이라면, 그래서 그 의도대로 남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면, 해리는 성냥을 손에 들고 다가가 느끼한 구애의 표정으로 수작을 부리며 성냥보다 더한 그 무언가를 주려고 애쓰는 상황이 전개될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기대해봄직한 해리의 반응은 의외의 것이다. 그는 서랍 속의 성냥을 공중으로 휙 던져줄 뿐이었으니까. 호감이 가는 낯선 여인이지만 그에게는 그 이상 더 큰 인연의 상대가 아니라는 듯 응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언뜻 싱거워보일지 모르는 <소유와 무소유>의 첫만남 장면에 왜 이렇게 큰 관심을 기울여 주목하는지 의아스러움이 생길 것같다. 사실을 말하자면, 두 남녀 인물을 연기한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이 이 영화를 계기로 실제로 연인이 되고 결혼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 험프리 보가트는 유부남이었고 19세의 로렌 바콜과는 15살 연상이었다.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두 남녀배우가 영화속에서 현실의 그들처럼 연기인 듯 연애인 듯 서서히 서로의 사랑을 안 그런 척 위험스럽게 키워가는 것을 엿보는 재미가 이 영화의 숨겨진 진짜 재미다. 물론 옛날 미국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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