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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정신과 뜨거운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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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정신과 뜨거운 심장
  • 정은영
  • 승인 2016.12.02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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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의 미술사산책] 시인이자 판화가 블레이크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 / 한 시간 속에 영원을 간직하라.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 And eternity in an hour.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가 쓴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 일부분이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자주 인용되고 또 널리 낭송되기도 해서 어쩌면 가장 사랑받는 영시(英詩) 구절 중 하나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블레이크라는 이름이 낭만주의 문인의 대명사처럼 거론되는 이유도 아마 이 시구(詩句) 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생전의 블레이크가 시인보다는 판화가나 삽화가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간 놀라운 게 아니다. 실제로 그는 다른 시인의 시집이나 자신의 문집에 삽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라’던 시인은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시인의 그림’이 몹시 궁금해진다.

 


‘태고의 날들(The Ancient of Days)’은 블레이크의 무수한 판화삽화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1794년 출판된 시집 <유럽>의 속표지로 사용하기 위해 블레이크 자신이 직접 동판화를 제작하고 맑은 수채물감으로 순도 높은 색을 보강한 것이다.


당시 출판된 시집은 현재 13권이 전해지는데 각 책마다 시인이 손수 채색을 했기 때문에 동일한 제목이지만 세부나 색상이 상이한 작품이 총 13점 남아있는 셈이다. 여기 실린 그림은 런던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도서관 소장본과 함께 블레이크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에너지가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이 어두운 하늘의 검은 구름을 헤치고 눈부신 빛을 쏟아내고 있다. 그 태양 안에 거하며 몸을 구부려 밖으로 긴 팔을 뻗은 이의 손에는 황금색 컴퍼스가 쥐어져 있다. 흰머리에 긴 수염을 휘날리고 있는 그는 누구일까. 직감적으로 말하자면, 우주의 창조자가 아닐까.


날카로운 황금컴퍼스가 측정하는 크기와 용량에 맞춰 저 아래 지상에는 인간과 자연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런 우주의 창조자에 걸맞게 이 작품의 제목은 종종 ‘태곳적부터 계신 이’로 번역돼 소개되기도 한다. 작은 책자의 속표지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지만 그 심리적인 스케일과 강도는 물리적으로 주어진 크기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다.


미켈란젤로의 인물상을 연상시키는 근육질의 창조자는 인체가 차지한 공간을 드라마틱하게 압축시킨 단축법(短縮法)으로 인해 금방이라도 태양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보이고, 그를 중심에 두고 뻗어 나오는 비정형의 곡선과 날카로운 직선은 서로 대조되어 각각의 강렬함을 한층 배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장엄하고 엄숙한 창조자가 작은 모래알에서 거대한 세계를 보는 바로 그 존재일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은 날카로운 황금컴퍼스를 도구로 사용하는 이 창조자는 수학적인 계산과 정확한 측량에 따라 한 송이 들꽃에서 무한한 천국을 발견할 수 있을까.


블레이크의 대답은 놀랍게도 ‘아니오’에 가깝다. 그가 구축한 신화적 세계에 따르면 측량과 계산, 이성과 법칙을 대변하는 이 창조주는 ‘유리즌(Urizen)’이라는 반쪽 창조주다. 말하자면 차가운 이성과 엄정한 규칙만을 대변하는 반쪽 실체라는 뜻이다.

 


또 다른 반쪽은 바로 상상력과 열정을 상징하는 ‘로스(Los)’라는 존재다. 거대한 망치를 든 젊은 대장장이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로스는 이성적인 규범을 강조하는 노인인 유리즌의 대척점에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블레이크에게 유리즌과 로스는 모두 원초적인 인간 본질이 분열되어 나온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성이나 상상력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결코 본래의 전일적(全一的)인 인간 존재를 회복할 수 없다.


작은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 짧은 순간 속에 영원을 간직할 수 있으려면 차가운 정신과 뜨거운 심장 모두가 필요하다는 뜻이겠다. 날카로운 컴퍼스와 무거운 망치. 유한 속의 무한과 순간 속의 영원. 불가능한 것들의 그 합일이야말로 시인이 우리를 책려(策勵)하는 생(生)의 방식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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