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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은 1970년대 '보문산 감나무집 원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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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은 1970년대 '보문산 감나무집 원자경'
  • 김재중 기자
  • 승인 2016.11.05 07: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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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70대 노인 “불치병 고쳤다, 신병 떨치는 큰무당 소문 기억”

 

정국을 강타한 ‘최순실 게이트’ 사건의 원류, 고(故) 최태민 씨가 1970년대 초반 대전을 무대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태민과 대전의 인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최태민이 대전에서 무속인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월간지 <현대종교>를 통해 지난 1988년 최초로 소개된 바 있다.


사이비종교 연구가인 고(故)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 1988년 <현대종교> 4~6월호에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이란 제목으로 이른바 ‘사이비 목사’들을 고발하는 과정에 최태민의 행적이 포함됐다.


탁 소장은 1973년 보문산 골짜기에서 ‘원자경’이란 이름을 사용한 최태민을 처음 만났다고 소개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보문산 골짜기’란 현 보문산 공원 진입로 부근인 대사동 일대를 말한다.


탁 소장은 1973년 5월 13일 ‘영세계’란 종교단체가 대전 대흥동 현대예식장에서 행사를 개최하면서 지역신문인 <대전일보>에 ‘영세계에서 알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광고를 싣고 참여자를 모집한 내용을 제시하며, 영세계 칙사를 자처한 인물이 ‘원자경’ 즉 최태민이란 주장을 폈다. 


당시 최태민은 스스로를 ‘영세계 칙사’로 자처하며 혹세무민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당시 광고 문구에는 “현대의학으로 해결치 못하는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난치병자와 모든 재난에서 고민하시는 분은 즉시 오시어 상의하시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최태민은 자신의 숙소 위치를 “케이블카에서 200미터 지점, 감나무집”이라고 명시했다.
 

1968년부터 37년 동안 운행된 보문산 케이블카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대전 토박이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각인된 장소다. 케이블카 진입로 주변 대사동 일대는 아직까지도 많은 무속인들이 터를 잡고 있어, 과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태민이 이곳에서 무속인으로 활동한 뒤 40여 년이 지나 ‘최태민’ 혹은 ‘원자경’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없지만, 70대 이상 노년층 중 ‘보문산 감나무집’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대전 문화동에 거주하는 김모 씨(75)는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1970년대 초반에 ‘보문산 감나무집’에 있는 계룡산 도사가 아주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며 “지금처럼 점을 보거나 그런 집이 아니고 불치병을 고쳤다느니, 신병을 떨치는 큰무당이라느니 하는 말들을 들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작고한 탁명환 소장의 아들인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는 최근 언론인터뷰 등을 통해 “1975년도에 갑자기 선친께서 구국선교단에서 활동하는 최태민이라는 인물을 보게 됐는데 그 인물이 바로 원자경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보문산 감나무집의 주인 원자경이 2016년 정국을 확 뒤집어 놓은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 최태민이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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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16-11-05 11:07:11
최태민최순실에 감사하다 무조건 새누리찍는데 그걸 깨트려 주었다 아니면앞으로 계속새누리 찍었을것이다
이번사건은 개인마다 충격이크다 사람은누구나 실수하고 잘못할수있다 솔직히인정하고 터놓고이야기하면 어느정도 해소는된다 그런데 확실한안보 원칙주의 돈욕심없는지도자 이미지완전 반대라는것 사과문1차2차공통점을보라 어려울때 도와 주었다는말이 공통점이다 이걸본다면 살아생전 평생 가지고가야할 대통령의 업보이다 퇴임후도 연결될꺼다 이번일로 박정희대통령의 평가도바뀌는 느낌이다 옛날에박정희 담화문발표할때 먹고살기 어려울때도 다듣고 일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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