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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성주, 진짜 양만춘은 누구인가?[영화 다시 보기] 안시성

누적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하며 지난가을 최고의 흥행작이 된 영화 <안시성>.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승리, 88일간의 전투를 그린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져줬다.

첫 번째는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 맞느냐, 둘째는 당 태종 이세민이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았느냐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왔고, 책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기정사실로 여겨왔던 이 두 가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영화는 관객에게 되묻고 있다.

먼저 양만춘이란 이름이다.

아쉽게도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資治通鑑)> <책부원귀(册府元龜)> 등 당시 역사를 기술한 역사서 어디에도 양만춘이란 기록은 없다. 안시성 전투(645) 500년 후인 1145년 고려 사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성주의 이름을 알 수 없어 애석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객관성 담보하기 어려운 이름 ‘양만춘’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배우 조인성이 안시성 성주 양만춘 역할을 맡았다.

그렇다면 양만춘이란 이름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중국 명나라 시대 <당서연의(唐書演義)>(1553)라는 소설책이다. <당서연의>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처럼 원・명 시대 유행하던 백화문(白話文) 소설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선조 때 예조판서를 역임한 윤근수의 <월정만필(月汀漫筆)>(1597)에 양만춘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이후 송준길의 <동춘당선생별집(同春堂先生別集)>,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신채호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등에 언급됐는데, 모두 윤근수의 기록을 인용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봐야 한다.

윤근수는 어떻게 자신의 저서에서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이라고 기술했을까? 윤근수는 예조판서로 중국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임진왜란(1592) 당시 참전한 명나라 장수들을 통해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적고 있다. 요컨대 윤근수가 만났던 중국인들은 당 태종의 일대기를 소설화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당서연의>를 읽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를 윤근수에게 전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고대 성씨연구에 대한 기록을 통해 양만춘의 실존 여부를 규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수건 전 영남대 교수가 쓴 <한국의 성씨와 족보>(서울대학교출판부, 2003)에 따르면, 고구려 시대 성씨로 해, 을, 례, 송, 목, 우, 주, 마, 손, 창, 동, 예, 연, 명임, 을지 등이 존재하지만 양씨는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양씨가 희성이라 기록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구려 사회가 씨족 중심이었고, 지배층이 요직을 독점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희성을 가진 사람이 성주의 지위에까지 오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혹시 고조선-고구려-고려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자신들이 적통임을 내세우고 있는 북한의 역사기록에서 양만춘을 찾아볼 수 있을까?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와 고고학연구소가 2004년 발간한 <최근 고구려사 연구 I>란 책자가 있다. 이 책자에는 조승희 사회과학원 고구려사 연구실장, 전동철 김일성종합대학 역사연구실장 등의 안시성 전투 관련 논문이 실려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 논문에도 연개소문은 등장하지만, 양만춘은 그 어디에도 언급돼 있지 않다. 오로지 ‘안시성주’란 표현만 발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사실은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셈이다.

#.중국 소설 속 가공인물 이름 딴 한국해군 구축함

안시성 전투가 고구려의 승리로 끝났는데 성주의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고 되물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양만춘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당서연의>란 소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중국사에서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버금가는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당서연의>에서 당 태종은 불세출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양만춘은 하찮은 조연으로 평가절하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자치통감> 등 중국 정사(正史)만 봐도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사서들은 이세민의 고구려 침략과 관련해 고구려군이 막대한 피해를 본 주필산 전투만 부각하고 안시성 전투는 당군 1000~2000명의 미미한 손실로 축소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어서 누구도 자신 있게 사실을 주장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말하고 내세울 만한 충분한 연구나 고증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안시성>은 이 전투에 대한 우리의 연구 성과를 반성하게 한다.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군의 기적같은 전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안시성 성주의 이름 등 몇몇 사실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연구가 이뤄졌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안시성>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자 중국인들은 ‘바이두’ 등 온라인 매체를 통해 자국 소설에 나오는 가공인물을 한국영화가 영웅시하고 있다고 비아냥댔다. 이제 우리 역사가들이 답할 차례다.

어떻게 논리적으로 반박할 것인가. 우리는 충분한 연구 없이 역사를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해군의 구축함 3호가 양만춘함이다. 중국 소설 속 가공인물의 이름을 사용했다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이제 두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안시성 전투에서 과연 당 태종 이세민은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았을까?

역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역사책에는 그 기록이 없다. 황제가 직접 참전한 전투에서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실명했다면 실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역사서 어디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신뢰성을 의심케 한다.

#.눈에 화살 맞은 당 태종이 수레 밀며 퇴각?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오른쪽이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이다.

그렇다면 이세민이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왜 전해져 온 것일까?

고려 말 문인 이곡의 <가정집(稼亭集)>과 그의 아들 이색의 <정관음(貞觀吟)>, 조선 중기 문인 김창업의 <가재연행록(稼齋燕行錄)> 등의 한시(漢詩)에 그 내용이 나온다. 이를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 사실로 기술함으로써 오늘까지 전해지게 됐다. 문제는 사료가 아닌, 시(詩)의 문학적・은유적 표현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 당 태종은 645년 9월 안시성에서 철수한 뒤 곧바로 수도 장안으로 돌아가지 않고, 장안을 위협하던 설연타족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이들을 토벌하고 6개월이 지난 646년 2월에야 복귀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심대한 건강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 있다.

더구나 <자치통감>에는 이세민이 안시성에서 퇴각하면서 요동의 늪지대인 요택을 지날 때 수레에서 내린 뒤 밀며 갔다는 기록까지 있다. 이 또한 눈에 화살 맞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당군이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군에 대패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따라다니는 영웅 양만춘과 이세민의 실명 사건은 설화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것과는 거리감이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 H. Carr)는 “사실을 소유하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도 없고 열매도 맺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도 “역사학의 임무는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에 있어 사실을 규명하는 것은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영화 <안시성>이 역사학자들에게 묻고 있다.

이충건 기자  yibido@hanmail.net

<저작권자 © 세종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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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3
  • lovely123 2018-12-02 21:32:53

    와! 기자 선생 님 역사학과 나왔나요? 어려운 사료를 언제 그렇게 다 보셨데요   삭제

    • sk3qjs 2018-12-02 22:00:27

      아직 안 봤는데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볼 생각을 하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풍부한 지식과 깔끔한 논평에 감탄하고 갑니다!   삭제

      • wushang3 2018-12-03 11:40:52

        영화 안시성 가족과 함께 재미있고 감명깊게 보았는데 양만춘 장군에 대한 의심은 전혀 해본적이 없었다. 본 기사를 읽고 영화보다 더한 감명을 받았다. 국민의 역사적 영웅에 대한 확실한 고증이 없이 마치 사실인 것 처럼 다루는 것은 아이들에게 또 다시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기회에 확실한 고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삭제

        • Hey 2018-12-02 21:12:48

          여러가지설이 있다고 들었던것같은데~
          신뢰감도있고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삭제

          • jgy1174 2018-12-02 22:03:12

            역사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의 바른교육이 우리의 자긍심이고 힘인데 이제까지
            우리는 잘못배운걸까? 그럼 누가 왜 그랬을까?
            너무 궁금합니다. 기자님께서 계속 글 올려주세요   삭제

            • anser25 2018-12-02 22:31:50

              양만춘은 가공인물인데 해군함정이름이 양만춘함이라.. 이정도면 코메디 아닌가요^^   삭제

              • Ttyyuu3443 2018-12-03 12:21:08

                영화 너무 재밋게 봤는데 이기사 보고나니 허탈 하네 믿고 싶지는 않지만 논리가 너무 정연하니 어떻게 해야하나 ㅠㅠ   삭제

                • shsahg 2018-12-02 20:38:57

                  다시한번 안시성 영화를 보고 싶네요   삭제

                  • Rehe 2018-12-02 20:50:02

                    우리의 역사를 좀 더 올바르게 연구하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좋은 내용 감사염^^   삭제

                    • 영민1145 2018-12-02 21:11:35

                      새롭고 재밌는 정보를 알아가네요!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삭제

                      3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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