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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터미널·공항·휴게소 음식의 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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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터미널·공항·휴게소 음식의 선진화
  • 이규식
  • 승인 2018.11.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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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문화의 눈으로 보다’] <15>식당의 몇 가지 풍경
우리나라 기차역 입점 식당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형태로 특성을 찾기 힘들다. 사진은 서울역 대합실.

#. “그냥 먹고 떠나간다”

기차역이나, 공항, 버스와 선박 터미널, 고속도로와 국도 주변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먹고 감탄한 적이 있을까. 대체로 맛이 없다, 가격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 등의 부정적인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른바 ‘가성비’로 따지면 대단히 저조하다.

가격과 분량이 대체로 일정한 프랜차이즈로 입점해있는 업체도 있지만 얼마 전 조사를 보면 같은 품목이라도 개별 업소마다 가격과 무게, 성분 등이 천차만별이어서 불신은 깊어진다. 더구나 대부분 고객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셀프서비스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다행히 이즈음,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해당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별미 음식개발과 아이디어를 집약한 독특한 상품으로 나름 주목받는 곳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역과 터미널 주변, 휴게소처럼 불특정 인파가 드나드는 곳에서 먹는 음식은 기대와 즐거움보다는 그저 잠시 허기를 달래고 떠나는 통과의례 성격이 크다.

이런 업소를 이용하는 고객 거의 전부가 오며 가며 찾는 일회성 ‘뜨내기’ 손님이니 가격은 물론 맛이나 품질 그리고 서비스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구시대적인 의식이 아직 남아서일까. 제공하는 음식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손님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해도 다른 여행객들이 또 찾아올 것이므로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오만함일까. 오늘도 내일도 열차와 버스, 승용차는 달릴 것이고 거기에 승객은 탈 것이며 배는 고프게 마련이니 누군가로 채워질 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계산이 남아있지는 않을지.

또는 철도공사, 도로공사, 공항공사 같은 기관에 지불하는 비용이 만만찮으니 가격과 품질이 반비례할 수밖에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고객 입장에서도 우동이나 국밥 한 그릇 재빨리 먹고 다시 길을 나서는 마당에 가성비를 따지며 불평불만을 털어놓아 무엇 하겠느냐고 다년간 체득한 학습효과 탓인지 모른다.

이런 각기 다른 생각의 쌍곡선이 교차하는 동안 나날이 진보하고 세련되어가는 소비자 의식과 반응에 예민한 우리 사회 식당 문화와는 별개로 그들만의 리그, 여전히 옛 코드에 머물러 있는 전근대적 마케팅이 지속되는 곳이 바로 이런 음식점이 아닐까.

중국휴게소(왼쪽)와 모로코 휴게소. 판매 품목은 그리 많지 않지만 자체제조 음식과 독특한 간식류가 많다.

#. 손님은 ‘뜨내기‘가 아니다

이와 같은 유형의 식당이 존속하는 배경에는 아직 여러 요인이 상존한다. 잠시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들러 끼니를 해결하러 찾아온 손님들이니 촉박한 시간상 미리 준비해둔 식자재를 간단히 조리하여 내놓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고객의 다양한 취향으로 인하여 이런저런 음식을 모두 취급하는 분식집 차원의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급속히 변화하고 진보하는 우리 사회 소비문화 패러다임에서 외로운 섬처럼 남아있는 휴게소・터미널・역 구내식당들의 영업 현실은 결국 외견상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고객의 암묵적 협조에 힘입은 바 크다. 조금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가성비가 미흡하면 지체 없이 항의하는 소비자 정신이 잠시 유보되는 드문 지대에 다름 아니다.

#. 포스팅 범위를 넓히자

예전에 비해 다소 주춤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른바 ‘먹방’이 방송되고 SNS에 포스팅되는 ‘맛집’ 소개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방송사 측으로서는 별다른 기획이나 아이디어 창출 없이도 일정수준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아이템이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공중파와 케이블TV 가릴 것 없이 거의 비슷비슷한 형태로 어떻게 섭외했는지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유형의 음식점 영업장면을 유려한 화면과 충동을 자극하는 내레이션으로 내보낸다.

맛집을 소개하고 품평하는 SNS 미디어는 주로 젊은 층이 참여하여 특유의 비판의식과 감각으로 호불호를 가리며 의견을 개진하는 열린 광장이 되었다. 대체로 젊은이들의 예리하고 깐깐한 맛집 평가에서도 역이나 터미널 그리고 휴게소 음식점은 대부분 제외되어 있다. 매일매일 엄청난 고객들이 찾는 업체건만 흡사 음식평가의 사각지대나 치외법권 지역처럼 그다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제 기성세대들은 오랜 경륜과 체험에서 습득한 합리적인 평가 기준으로, 젊은 층들은 날카로운 감각과 비판의식, 아울러 민첩한 행동력과 소통으로 우리 음식문화 수준 향상에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맛있는 역전 식당, 그래서 여행목적이 아니라도 다시 찾고 싶은 터미널 음식점, 기억에 남고 가족과 친지와 함께 일부러 먼 길을 돌아 들르고 싶은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 쫓기는 시간이지만 감동적인 공항 식당에서의 한 끼를 즐길 날을 기다려 본다.

일본 삿포로 역 도시락.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도시락은 일본 기차역의 별미다.

#. 여행객은 ‘홍보요원’

자주 비교하게 되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경우가 일본의 사례가 아닐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가까운 일본의 경우…”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사안의 특성을 가리지 않은 현안의 단순비교는 별 의미 없는 수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지리적으로는 가까울지 모르지만,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배경과 맥락을 전제로 한 일본의 역과 휴게소에서 파는 음식과 식품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 별미로 꼽히는 저변을 생각해 본다.

특히 그 가운데 역에서 파는 도시락 ‘에끼벤(驛弁)’은 그 지역 생산 식재료를 사용하여 각기 차별성 있는 맛과 품질, 합리적인 가격으로 경쟁하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뜨내기가 아니라 자기 식당 음식, 판매하는 제품을 전국 나아가 세계 곳곳에 알리는 홍보요원으로 간주하기 때문일까.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생각의 차이, 발상의 전환이 음식 문화로부터 비롯되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선순환 구조로 확산하였으면 한다.

천 원짜리 물건 하나를 팔더라도 정성을 다해 꼼꼼하게 포장하고, 떠나가는 손님을 향해 깊이 몸을 숙여 인사하는 상인 정신과 서비스 의식을 높여 지금 끝없는 불황의 터널에 갇힌 우리나라 경기회복에 작은 기제가 될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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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규식은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남대 명예교수다. 대전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대전시 도시디자인위원,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달의 책 선정위원장, 외교부 시니어 공공외교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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