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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년,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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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년, 무엇을 남겼나
  • 김수현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 승인 2015.04.22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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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루 세종 | ‘인간 존엄’의 침몰, 진상규명이 먼저다


1년 전, 304명 영혼이 바다 속으로

정부, 조사대상이 조사주체? 어불성설

대통령 ‘눈물의 약속’ 지켜지고 있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을 좋아했다.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그녀는 영화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여자로서의 삶은 불행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귀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는 한 때, 아니 지금도 뭇 남성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더욱 아름답고 빛나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낮은 삶을 살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위대한 존재 이전은 아직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은 울림으로 메아리치고 있다.

 

지난 9일, 오드리 헵번의 아들인 션 헵번과 손녀인 엠마 헵번은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세월호 기억의 숲’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션 헵번은 “시들어가는 화환을 유족들에게 보내기 보다는 자연과 같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숲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억의 숲은 팽목항에서 4.16km 떨어진 전남 진도군 백동 무궁화동산에 조성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노란 리본과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기자회견에 임한 엠마 헵번의 발언이었다. 외모와 영혼까지도 할머니를 그대로 닮은 엠마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엄마로서 유족들이 겪은 아픔과 고통을 통감한다”며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은 가족들에게 ‘부디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세월호 유가족의 근원적 상처와 교감하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지난해 4월 16일, 304명의 영혼이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아직도 9명의 실종자는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1주기를 맞이했지만 지난해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세월호 유가족은 팽목항으로 다시 걸어가고 있고, 광화문으로 다시 모이고 있다. 절규와 분노는 높아지고, 치욕과 고통은 깊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죽음을 볼모로 뱃속을 채우고자 하는 반인륜적인 집단으로 매도까지 당하고 있다. 만약 너의 아이었다면, 만약 나의 아이었다면,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성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새 유가족은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이웃이 아닌 나와는 다른 타자(他者)로 고립되고 있다. 고통과 상처 속에 진실을 찾기 위해 절규하는 이웃에 대한 동질감은 부재하다. 정치가 조장하고, 언론이 침묵하고, 다수가 외면하며 관계의 단절을 부추기고 있다.

 

세월호는 ‘인간 존엄’이 침몰한 것이다. 이 침몰 앞에 그 누구 하나 당당한 사람이 없다면 존재의 근원 앞에 부끄러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참회하고 성찰해야 한다. 정부는 정부의 입장에서, 언론은 언론의 입장에서, 국민은 국민의 입장에서 처절하게 반성하고 질문해야 한다. ‘인간 존엄’의 침몰 앞에 발가벗고 서야 한다. 다시는, 다시는 존엄을 훼손하지 않고 생명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얕은 술수와 계산이 아닌 진심과 진정성으로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은 진심과 진정성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상식과 예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인력과 예산을 축소하는 것도 모자라 공무원들이 주요 직책을 맡겠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세월호 초기 대응에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대한민국호의 침몰로 이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세월호 진상규명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정부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세월호 조사대상이 세월호 조사주체가 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세월호 진실을 인양하기 위해서는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정부의 시행령은 폐기하는 것이 상식이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이 횡행하고 있다.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않던 정부에서 갑자기 ‘돈’으로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단순 해양교통사고라 폄훼했던 여당 의원의 발언이 또다시 엄습하는 듯하다.

 

아니 의원의 발언이야 돌출적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돈의 향연’을 펼치는 정부의 행태는 구조적이고 공세적이라는 점에서 절망스럽고 두렵기만 하다. 씻김굿을 해도 모자랄 판에 돈잔치를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진상규명이 먼저다. 사람이 먼저다. 생명이 먼저다. 돈 판을 걷어치우는 것이 마땅하다.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중남미 순방을 위해 떠났다. 우리 정부가 대외적으로 약속해서 한 일이고 국가적인 사업들로 연기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얘기하면서 말이다. 지난해 세월호 담화를 발표하면서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이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눈물의 약속을 기억한다. 과연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 고통받고 상처받은 이들이 있는 낮은 곳으로 임하고 있는가. 오드리 헵번을 좋아한다. 아직도 가슴 속에 살아있다. 아니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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