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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그리운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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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그리운 대로
  • 김지용 영화감독(중부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 승인 2016.05.25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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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의 시네마 쉐이크 | ‘국제시장’

인물 동선 따라 역사의 아픔·감동 전해
곳곳 코믹 설정·배우 열연 클리셰 커버

충무로 대한극장 앞은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좁은 인도를 휘감아 돌며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드는가 하면, 건물 한쪽 골목에선 암표상과의 은밀한 뒷거래가 이뤄졌다. 이렇듯 주말, 연휴 등을 이용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한때는 한국영화 제작의 메카였으며 필자가 한동안 수시로 드나들던 필동의 영화사 사무실이 있었던 곳이다. 대한극장 뒷골목으로는 영화 장비를 빌려주는 업체들과 편집실 등이 대로변 영화사들과 사이좋게 있었고, 한 여름의 습한 기온 속에서 들러붙어 버린 편집용 16밀리 필름을 정리하던 20여 년 전의 어린 청년이었던 내 모습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대한극장을 찾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느 해인가 운전하며 그 앞을 무심코 지나가다 공사용 가림 막으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극장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종로의 단성사가 그랬던 것처럼 사이좋게 두 영화 상영관은 그렇게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보통 35밀리 필름으로 영사할 땐 일명 마키(롤)가 여러 권으로 나뉘어져 영사기사들이 약 20여분 에 한 번씩은 마키 체인지를 해줘야했다. 그런데 가끔씩 기사들이 졸거나 딴청을 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허연 화면이 스크린에 비치는 상영사고가 나곤 했다. 때로는 영상과 사운드가 불일치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에피

소드들이 이제는 극장을 기억하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마침 윤제균 감독의 신작 <국제시장>의 시사회가 몇 년 전 새롭게 단장한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공사 후 처음 찾는 극장도 궁금했고 18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영화의 실체도 그 베일을 벗는 순간이었다.

흥남 부두를 통해 필사의 피난을 떠나던 덕수(황정민)는 아버지, 여동생과 생이별을 하게 되고 평생을 이산가족으로 살게 된다. 아버지와 헤어지기 직전 덕수에게 가장 노릇을 단단히 부탁했던 아버지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고모가 운영하는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를 찾아가라고 하며 그 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덕수는 ‘꽃분이네’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지만, 입에 풀칠하며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이다. 남동생의 등록금을 벌어야 했던 덕수는 결국 독일 파견 광부로 떠나고, 역시 파견 간호사로 일하던 영자(김윤진)를 만나 평생을 함께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신혼은 잠시의 행복만을 허락한다. 여동생의 결혼자금과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덕수는 다시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 건설 기술 근로자로 떠난다.

영화 <국제시장>은 주인공 덕수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간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역사적인 흥남부두 철수 장면, 사람 빼고 모조리 다 외제라고 했던 부산 국제시장 통의 생생한 서민들의 모습, 재독 광부·간호사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나 베트남 전쟁,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방송까지, 영화는 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역사의 아픔과 감동을 전한다.

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설정들이 감동의 인위적 강요로 느껴지거나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군데군데 코믹한 설정과 오달수 등 배우들의 열연이 클리셰를 어느 정도 커버해줬다. 이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포인트다. 

영화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평생 고생만 했던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한바 있다.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남쪽으로 피난해야 했고, 국제시장이란 치열한 삶의 틈바구니를 뚫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바로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할아버지다.

한 동안 자주 가던 피맛골이나 인사동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오랜 시간동안 단골이었던 낡은 가게, 그 속 이모님들의 모습이 이제는 현대식 식당에 익숙해져 조금은 낯설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유행가요의 가사처럼 추억, 기억이라는 것은 아픔은 아픈 대로, 그리움은 그리운 대로 맘속에 담아둬야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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