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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 ‘종촌’ 이름이 뭐 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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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 ‘종촌’ 이름이 뭐 길래?
  • 이충건
  • 승인 2015.02.1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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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책임전가, 진정성이 아쉽다

우리의 땅 이름에는 치열한 글자의 경쟁사가 깃들어 있다. 한자와 이두, 그리고 한글. 결과는 한자의 압승이다. 도시 이름 중 순수한 한글은 서울이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조선시대에는 한글과 한자 지명이 함께 사용됐다. 한자 지명은 지도나 문서 등에 기록하기 위해 쓰였고, 일반 민중 사이에서는 순 한글 고유 지명이 지속적으로 사용됐다.

지명을 두고 벌어진 글자 전쟁은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결판났다. 빠른 시기에 효율적인 식민지 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일제는 행정구역 재편에 나섰다. 이를 위해 조선총독부는 임시토지조사국을 꾸려 토지조사사업과 지도를 제작했다. 지역 말살의 음모도 숨어 있었다. 가령 공주처럼 역사가 오랜 지역은 대전, 연기 등으로 찢어발겨 놨다. 이 과정에서 한글 지명이 일본식 한자 지명으로 바뀌었고, 여러 지명이 합쳐지면서 정체불명의 이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세종시의회 교육위원회가 ‘한울’이란 한글 이름을 배척하면서 최종 선택하고 최교진 교육감이 전화로 구두 동의했다는 ‘종촌(宗村)’도 사실은 그 유래를 확인할 수 없는 한자 지명이다. 일제가 연기군 종촌 1,2,3리에 해당하는 여러 마을을 합치면서 대표적인 고을이름인 ‘밀마루’를 ‘종촌’으로 표기한 것이다. 굳이 역사성과 고유성을 살리고 싶었다면 ‘민마루’(발음이 어렵다면 ‘밀마루’)를, 그저 좋은 의미의 한글 표기를 원했다면 당초 교명제정자문위원회가 제안한 ‘한울’을 채택해야 옳았다는 얘기다.

세종시교육청 교명제정자문위원회에 참여했던 시의원 안찬영은 ‘종촌’과 ‘한울’에 대한 위원들의 지지가 각각 4대 5로 팽팽했던 데다, ‘한울’은 지명과 연관성이 없다고 봤다. 그리고 시의회 교육위원들도 안 의원의 판단에 동의했다. 교육위원장은 최교진 교육감에게 동의를 구하는 전화까지 했다. 시의회도, 교육청도 ‘한울’을 배제한 결과가 지금과 같은 시민적 저항으로 나타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는 사태를 해결하려는 태도다. 물론 시의회나 주동자로 몰린 안찬영 의원은 억울할 수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봐달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을 헤아리는 게 우선이다.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다수의 시민을 상대로 변명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의회가 시민 위에 군림한다는 오만함으로 비쳐질 수 있다.

최교진 교육감도 이번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감(語感)’이란 게 주관적일 수 있으므로, 최 교육감에게 ‘종촌’은 촌스럽지도, 발음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 있다. 향토사적 정보를 습득하지 않아 ‘종촌’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수 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시의회가 교명을 최종 확정했으니 할 일 다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교육청이 이번 사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보고 있다.

교육공동체가 구성이 되지 않았으니 정확한 의견을 수렴해 다시 절차를 밟겠다는 교육청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일이 선례가 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교명을 정했다가 교육공동체가 구성되고 다시 의견을 수렴하는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행정력의 낭비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뿐이다. 유치원, 초등, 중등 학교급별로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따라서 시의회가 됐든 교육감이 됐든 어느 쪽이든 먼저 시민을 위해 수습에 나서야 한다. 시회의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의원발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될 수 있다. 교육감이 먼저 재의 요청을 해도 좋다. 지난해 1월 유한식 당시 세종시장이 시의회가 의결한 ‘방축동 개명안’에 대해 재의요청을 해 도담동으로 동명을 되돌린 전례가 있다.

최근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리턴’은 빨리 사죄하고 책임지는 태도가 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일깨워준다. 겸손하게 먼저 고개 숙일 줄 아는 진정성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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