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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더욱 아름다운 삶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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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더욱 아름다운 삶의 노래
  • 황혜진 교수(목원대 TV·영화학부)
  • 승인 2016.05.25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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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의 영화와 사회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98세·89세 76년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사랑은 서로의 존재에서 기쁨 발견하는 것

제6회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2회 전석 매진은 물론 관객상을 수상한 독립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가 개봉했다. 2011년 KBS <인간극장>에서 방영돼 이미 시청자에게 깊은 감동을 줬던 이야기의 속편 격인 이 영화는 11월 27일 개봉 이후 5일 만에 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일반 상업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성적이다.


강원도 횡성의 작은 마을,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는 76년을 연인 같은 부부로 살아왔다. 이들의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이 펼쳐지자마자 무장해제가 돼버리는 것은 긴 세월을 함께 지내왔지만 여전히 서로를 아끼는 모습 때문이다. 기껏 쓸어 모은 낙엽을 던지면 토닥거리고 눈을 치우다가 눈싸움에 빠지는 것으로 부족해 개울물에 반찬거리를 씻는 할머니에게 물장난을 거는 할아버지, 그리고 이에 질세라 귀여운 복수를 감행하는 할머니! 그뿐인가? 한밤중 화장실 나들이도 부부에게는 달달한 데이트다. 무서우니 꼼짝 말고 밖에서 기다려달라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의 청대로 노래를 부르며 두려움을 쫓아주는 할아버지에게서 문자 그대로의 ‘친함’이 느껴진다. 서로를 향한 말에는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마음이 또 얼마나 가득 묻어나는지!


인위적인 플롯에 의해 완성된 깊이 없는 러브스토리가 가상의 공간을 넘어 현실의 연인들에게 전시용 연애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는 현실에서 보면, 오랜 시간 한 사람만을 향해 온 이들의 애틋한 사랑은 거의 판타지에 가깝기에 몰입감을 높인다.


그러나 76년의 결혼생활은 판타지가 아니라 혹독한 현실이기도 했을 터! 해방 이전에 시작된 인연이니 그 긴 시간을 동고동락해 오면서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두 분이 함께 겪은 아픔 중 제일은 아마도 6명의 자녀들을 먼저 떠나보낸 일일 것이다.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한때 젊은 부모였을 부부는 손을 꼭 잡고 장에 나가 6벌의 내의를 산다. 한 벌, 한 벌 펼쳐보던 할머니가 예쁘고 따뜻한 내의 한 번 못 입혀 본 과거를 안타까워하며 ‘아이들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할 때, 나이가 들면 감각마저 퇴화해 슬픈 기억 따위는 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무디어가는 감각은 노화의 결과가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연민을 잃은 탓인 것을!


부부의 삶이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대목 역시 할머니의 생신에 모인 자녀들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부모님에게 소홀했음을 탓하는 막내와 그 말에 발끈하는 큰아들의 다툼을 지켜보면서도 부부는 호통은커녕 안타깝게 지켜만 본다. 밤낮 없는 고단한 노동으로 키워냈을 지난날에도 불구하고 자녀들 앞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순한 아이가 되어버리는 두 분의 모습이 어쩐지 처연하다.


영원히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을 듯한 부부의 일상에 균열이 가는 것은 할아버지에게 찾아온 병마 때문이다. 아끼던 강아지 또순이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예감했듯이 할아버지의 노환이 급속도로 진행돼 식욕을 잃고 누워 있는 날이 계속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옷과 이불을 태우면서 조용히 이별을 준비한다. 물론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은 영원한 결별이 아니라 잠시 다른 세계에 속해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곧 다시 만난다는 믿음이 있다고 76년 연인과의 이별이 어찌 심상할 수 있겠는가? 석 달만 더 함께 있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절절히 전해진다. 할아버지가 먼저 간 아이들을 찾아 길을 떠난 날, 남은 옷가지들을 태우며 산소 옆에 한참을 머물러 있던 할머니는 이별인사 후에도 결국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긴 울음을 터뜨린다.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경험하는 삶의 과정이다. 모든 삶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를 만나 평생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만한 지복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지복을 누린 부부를 통해 사랑이 서로의 존재 자체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존재와 가치가 일치하는 자연을 닮아야 얻을 수 있는 능력일는지도 모른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기는커녕 그마저도 착취하듯 소비해 온 근대 이후의 문명은 자유로운 개인을 탄생시킴으로써 내면적 삶이라는 독립적인 영역을 창조했다. 그러나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간은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할머니의 노랫말처럼 “당신만을 사랑해요”라는 고백이 한 치의 의심 없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 관객들의 눈물에서 그런 소망을 보았다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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