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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EQ, 아빠는 IQ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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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EQ, 아빠는 IQ 담당
  • 김기남(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 승인 2014.11.08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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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의 배움터이야기 | 영재 만들기

영재교육, 성공적 입시 위한 디딤돌 전락
학교수업, 질문·토론 사라지고 오직 진도
아빠는 대화 많이, 엄마는 아이 친구처럼

달랑 세 명이 함께 사는 우리 가족은 각자가 너무 바쁘다. 아이 학교에서 아침 급식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나마 모여 먹던 5분짜리 아침식사도 잠으로 대신하고, 반쯤 눈 뜬 상태에서 일어난 순서대로 욕실을 쓰고 먼저 준비된 순서대로 집을 나선다. “갈게” “안녕” 그제 서야 서로의 풀리지 않은 목소리를 듣는다.

밤이면 하나 둘씩 집으로 모여들긴 하지만 각자 낮에 밀린 일들을 하느라 바쁘다. 한 달에 달랑 4번 있는 주말조차 모여 있기 참 힘들다. 그러다 찬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어느 밤 문득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건 마치 ‘주지승’이랑 ‘비구니’랑 ‘동자승’ 셋이 모여 사는 한 밤의 절간 분위기다. 잠시 일거리를 놓고 “치킨 먹을 사람?”하면서 운을 띄워보는데, 대화도 하던 사람들이나 한다고 그저 TV 틀어 놓고 다들 열심히 먹는데 집중한다. 이런, 살만 쪘다.

오랜만에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가족끼리 외식을 했다. “요즘 재밌어?” “응” “학교에서 영재원 신청하라고 알리미 문자 왔던데” “아 맞다” “해 볼 거야?” “아니, 별로야. 그거 영재원 준비 학원을 다니던지 선행을 했어야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네” “그렇지 뭐, 근데, 그거 이제 스펙도 안 된대” 머리랑 손으론 오랜만에 생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게임에 열중하는 아들 녀석의 짧은 단답형 대답. 울 남편 그 틈에 휴대폰으로 야구 중계 보느라 정신없다. 그러다가 눈치 없이 한 마디 거든다. “그렇게 쉽게 포기하면 안 되지, 해보지도 않고” “네” 그 날 가족외식도 그렇게 끼니 때우기로 끝이 났다. 또 살만 쪘다.

초등학생 때 다녔던 수학영재원에 살짝 실망했던 찰나, 올림피아드 준비반에 넣으란 얘기에 그저 ‘학원의 상술’이려니 하며 웃고 말았던 게 슬쩍 후회 된다. 이쯤 되면 과학고는 꿈꾸면 안 되는 거라 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 다른 선진국들이 그러하듯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영재 교육을 도입 했다. 세계 노벨상 수상의 30%, 미국 아이비리그의 30%, 세계 500대 기업 42%의 경영진을 배출한 이스라엘의 영재교육과 1950년대에 일찌감치 영재교육 체계를 마련한 미국의 영재교육이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10년 만에 중학교 1학년짜리 아이 입에서 ‘학원을 안 다녀 못 가고, 스펙이 안 되니 필요 없다’니.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우리나라 영재교육이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가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영재교육은 가정에서의 자녀교육법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하는데, 그 핵심은 ‘대화와 질문, 그리고 토론’에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 말에 토 달고, 시끄럽고 말이 많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버릇없다, 말대답 하지마라, 조용히 해라, 야단치는 대신 함께 토론하고 서로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결론을 만들어 간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마다 스스럼없이 질문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대답해 준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낮에는 함께 놀아 주고, 잠자리에서는 책을 읽어준다.

학교 수업시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한다. 이런 대화들 속에서 부모님들은, 또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재능을 찾아낸다. 아이들의 재능은 다양하다.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수의 아이들에게 200개쯤 되는 다양한 분야의 영재교육을 실시하는데, 심지어 ‘유머’나 ‘이야기 들어주기’ 분야도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인문영재 등 결국 교과목 공부를 선행한 아이들에게 성공적인 입시를 위한 디딤돌을 만들어 주는 것에 그치고 있는 건 아닌지 왠지 씁쓸하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과 일상에서 하는 토론도 우리는 학원에서 특별히 돈을 주고 배운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진도가 급하다. 질문하고 토론하다 늦춰진 진도를 급하게 마치다 보면 시험 점수에 민감한 우리 아이들이나 학부모로부터 어떤 질책을 받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갈수록 수업시간에 입을 다물고, 선생님과는 별도의 상담시간이 아니면 말을 섞지 않는다. 부모님의 질문에는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친구들과의 대화는 반이 ‘욕’으로 채워진다. 초등학생 때는 ‘저요’ ‘저요’하며 서로 시켜 달라 엉덩이를 들썩 거리던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건지, 어느 학교를 막론하고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대답하게 만들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어쩌면 예전보다 유독 사춘기를 힘들고 무시무시하게 보내게 된 것도 가족이 함께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이스라엘 영재교육의 바탕이 되는 유대인의 전통적 자녀교육은 철저히 역할 분담이 되어 있다고 한다. 엄마는 EQ(감성지수) 담당이고 아빠는 IQ(지능지수) 담당이란다. 아이는 학원에서, 아빠는 골프장이나 산에서 보내는 주말이 유대인 아버지들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유대인 아버지들은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여행을 간다. 결국 그런 시간들은 많은 대화와 토론의 시간이 되고,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우리 아이들이 글로 배우는 지식을 몸으로 체득한다. 유대인 아이들은 그렇게 지혜를 갖춘 영재로 길러지나 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진짜 영재들의 뒷이야기에 아빠들의 ‘바지바람’ 얘기가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집 IQ 담당 아빠는 돈 버느라 학원에 아이를 맡긴다. 또 갈수록 높아지는 학원비를 버느라 갈수록 더 바빠져 아이랑 함께할 시간이 없다. 이 가을, 너무 소중한 걸 잃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이켜 본다. 비트박스에 빠져 ‘푸파푸파파’ 거리는 아이에게 ‘이제 공부 좀 하시죠’ 대신 EQ를 떠올리며 장단이라도 열심히 맞춰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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