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데카당스의 정서, 눈물 그러나 희망
상태바
데카당스의 정서, 눈물 그러나 희망
  • 송전(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공연예술학과)
  • 승인 2014.11.08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전의 연극읽기 | 체홉의 ‘벚꽃동산’

제정말기 무너지는 봉건적 농경체제 그려
비극적 귀족 몰락 불구 작가는 “코미디”
‘관찰자’ 태도 견지… 현실 풍자로 읽혀

1900년경 러시아 시골의 한 귀족 저택. 5월초 어느 날 새벽 2시인데도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5년 동안 집을 떠나 파리에 살고 있던 대충 40대 후반인 여주인(라네프스카야 부인)이 다시 저택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저택 주위에는 벚꽃나무가 빙 둘러 피어있다. 여주인에게는 6년 전 변호사였던 남편이 죽었고 그 이듬해에는 7살짜리 아들이 강에 빠져 익사한 아픈 사건이 있었다. 여인은 일상을 내팽개쳐버리고 애인과 프랑스 파리로 가버렸던 터였다.

그녀의 파리 생활도 여의치 않았다. 거기에서 많은 돈을 들여가며 병든 애인을 보살폈건만, 그 애인이 여인을 배신하고 그 사이에 그녀의 자산도 모두 탕진된 상태였다. 이 소식을 들은 17세 딸(안냐)이 파리로 가서 어머니를 저택으로 다시 모셔온 것이다.

집안 재정상태도 말이 아니다. 그 동안 부인의 오빠(가에프)가 남아있었지만 그 역시 삶을 향유만 했기에 부채가 누적되어 있었다. 이제는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벚꽃동산이 포함된 이 소 귀족 집안의 영지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인을 맞아들인 사람 중에 이 소 귀족 집안에서 오래 동안 농노로 일했던 집안출신의 27,8세쯤 되는 신흥부자 젊은이(로빠힌)가 있었다. 부인에게 호의를 지닌 그는 경매를 피할 방안을 제시한다. 벚꽃나무를 모두 베어낸 자리에 별장을 지어 임대사업을 하라는 것이다. 옛 습관에 젖어있는 오뉘는 이 ‘천박한’ 사고에 관심을 뵈지 않고 여전히 허황한 방안을 꿈꾸고 있다. 딸을 부자에게 시집보내거나, 잘 사는 친척에게서 유산을 받거나 유족한 친구에게 어음을 주거나, 혹은 빚을 내거나. 어디에나 사랑은 있어 여주인의 죽은 아들 가정교사이며 새 시대를 꿈꾸는 한 만년대학생(트로피모프)이 망해가는 집안의 딸(안냐)을 마음에 품고 있다. 벚꽃동산을 팔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여주인이 돌아온 지 2,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에 집안 남녀 하인들 사이에 사랑의 삼각관계(야샤-두나사-예삐호도프)가 형성되기도 한다. 경매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소 귀족 오뉘의 소비행태는 여전히 변함없어 집안 살림을 도맡고 있는 양녀(바랴)의 마음은 초조하다. 신흥부자 젊은이가 재차 대안 실행을 제안하지만, 오뉘는 여전히 흐리멍덩하다. 이 젊은이와 만년대학생 사이에 말시비가 붙다가 후자가 자신의 인생철학을 거창하게 늘어놓는다.

“우리[사회]는 적어도 200년은 뒤쳐져있습니다. […] 과거를 뉘우치고 청산해 버려야합니다. […] 비상한 노력, 부단한 노력으로밖엔 구할 도리가 없어요. […] 그렇지만 내 영혼은 밤이나 낮이나 […], 어떤 표현할 수 없는 예감으로 가득 차 있어요. 행복한 미래를 느낍니다.”

그의 장광설은 오뉘 등 주위 사람들에게 그저 재미있게 느껴질 뿐이다. “우리는 사랑 너머에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는 대학생과 사랑을 나누게 된 집안 딸(안냐)만은 그의 말을 황홀해 한다. 돌아가는 사정을 볼 때 벚꽃동산이 팔리게 될 것 같다.

8월말이다. 망해가는 집안에 악단을 고용한 파티가 열리고 있다. 곳간 지킴이 양녀(바랴)에게는 그저 어이없는 일이다. 여주인은 파티의 춤을 즐기면서도 경매문제로 법원에 간 오빠(가에프) 소식을 초초히 기다리고 있다. 친척이 보낸 어느 정도의 돈으로, 크게 가능성은 없지만, 땅을 구해보려는 것이다. 이윽고 기진맥진한 오빠가 돌아왔지만, 파티 현장에 왔다가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여주인이 땅을 사간 사람은 누구냐고 재차 묻자, 법원에 함께 갔던 집안농노 후손인 신흥부자 젊은이(로빠힌)가 자신이 땅 주인이라고 감격하며 호쾌하게 웃으며 선언한다. “저는 조부님이나 엄친께서 노예로 부림 받고 부엌에조차 들어갈 수 없었던 이 영지를 샀습니다.” 벚꽃동산이 결국 팔린 것이다. 흐느껴 우는 여주인에게 딸이 다가가 위로한다. “우리의 생활은 아직 남아있어요.[...] 저희들은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새로운 동산을 얻을 수 있어요.”

몇 주 뒤 모든 집안사람들이 각자 짐을 꾸려 사방으로 흩어져 나간다. 여주인은 친척이 보내준 돈을 갖고 병든 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파리로 돌아가고, 여주인 오빠는 곧 포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은행 직원으로 취업할 예정이고, 딸은 만년대학생과 새로운 삶을 꿈꾸고, 양녀는 품은 사랑(로빠힌)을 성취하지 못한 채 먼 곳으로 일자리를 찾아간다. 이들이 떠나가는 순간 아름다운 벚꽃나무를 넘어뜨리는 도끼소리가 울려난다. 곧 헐릴 저택 안에는 90평생 하인(피르스)이 실수로 갇혀있다. “마침내 한 평생이 지나갔구나. [...] 내게는 아무 것도 없군. 무능력자 같으니”하며 긴 의자 위에 몸을 눕힌다. 그는 곧 죽을 것이다. 벚꽃동산은 소멸한다. 남는 것은 미지의 새로운 삶이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홉(1860-1904)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의 내용이다. 그의 44세 생일날인 1904년 1월30일 모스크바 예술인극장에서 첫 공연이 이뤄졌고 그 아내 올가 체홉(당시 34세)이 여주인 역을 맡았으며, 연출은 그의 연극을 처음부터 함께한 스타니슬랍스키였다. 자신의 의도와 달리 ‘비극적’으로 작품을 풀어낸 첫 공연에 분노했던 체홉은 공연 6개월 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그 스스로가 방에 갇힌 노인 피르스였던 셈이다.

당시 러시아 역사는 1917년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행해 달리고 있었다. 체홉은 러시아 제정말기에 산업화 물결에 밀려 서서히 무너지는 봉건적 농경체제의 모습과 계층변화 양상을 이 작품에서 ‘벚꽃동산’이라는 상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 흐름은 여주인의 입장에서는 비극적이지만, 체홉은 이 작품을 ‘코미디’라고 규정했다. 얼핏 이해하기가 어려운 규정이지만, 따뜻한 마음의 의사이자 자연과학도였던 체홉의 눈에는 격변하는 사회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소극적이고 무능하고 기력 없는 소 귀족들과 농노해방(1861년 4월) 선언 이후 서서히 변해가는 여타 군상들(옛 농노 계급, 체제 변혁 지향의 젊은 세대)의 행동거지가 코믹하게 비쳐졌고 이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 다른 문호였던 톨스토이의 ‘계몽교사’적인 태도나 고르키의 ‘투사’적인 태도와 사뭇 다른 ‘관찰자’의 태도를 지녔던 체홉의 문학적 특징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문학은 자주 현실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무대에 오른 연극  체홉의 명작 <벚꽃동산>(11월11~16일, 심재찬 연출)에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기 시작한 한국의 1960년대 초 시골 지주 집안의 모습과 정서를 느꼈을 수도 있다. 21세기의 세기말 분위기(데카당스)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