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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너지, 신의 축복이어라
  • 이순구 화가(만화영상학박사)
  • 승인 2014.10.21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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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산책 | 프랑스 파리에서 ③유럽의 예술도시



베를린 아트페어부터 런던·파리 전시회 돌며
삶의 가치에 끝없이 투자하는 그들에 부러움
마음으로 되뇌는 한숨 “아, 대한민국이여!”


계절은 지난시간 무엇을 놓고 왔는지에 대한 배려도 없이 또 한 자락을 접는다. 웬일인지 가을의 프랑스가 밝다. 미술관과 박물관 곳곳을 보며 내 스스로 작아짐과 사람들의 위대함이 전율로 다가온다.


얼마 전(9월16~21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아트위크(Art Week)가 열렸다. ‘abc’로 명명된 이 아트페어는 베를린 현대미술(Art Berlin Contemporary)을 지칭한다. 베를린 아트포럼 주최로 ‘베를린 아트주간’이 도시 곳곳의 갤러리 및 공동전시장에서 개최됐다. 이 기간에 맞춰 발품을 팔았다.


‘베를린 아트주간’은 베를린시에서 새롭게 시작한 현대미술 전시와 행사다. 이를 통해 문화도시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해 기획 끝에 열리는 ‘베를린 아트주간’에는 도시 내 100여 개의 갤러리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미술작품이 전시된다. 동서냉전의 서글픈 상징이었던 베를린은 통일 후 기반사업이 없어 적자에 시달렸다. 그러나 최근 유럽을 대표하는 '예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베를린시는 다양한 문화와 문화전략을 짜 구체적으로 예술도시를 실현해왔다. 신인예술가들에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정책에 참여하는 갤러리와 기관의 지속적인 활동을 독려했다.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는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의 말에서 도시의 예술혼을 깨우려는 베를린시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지난주에는 런던에 다녀왔다. 테이트모던(Tate Modern Museum)에서 비 구상성의 극대를 이룬 쉬프레마티슴(절대주의)를 확립한 카지미르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1878-1935)와 현대문명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의 시그마 폴케(Sigmar Polke 19412010), 두 거장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기획전 외에 다른 홀에서는 세계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런던의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은 특별한 기획전을 빼면 대부분 무료다. 출입구에 기부금 통이 설치되어 있는데 기부 액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미술관마다 인원이 차고 넘친다. 어린이부터 대학생까지 수업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기성 작가는 큰 작품 앞에서 모사화를 그린다. 그 많은 작품들 앞에서 부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런 것이 예술이고 문화이며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프라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의 현실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테이트브리턴(Tate Britain)에서는 1984년부터 ‘터너 프라이즈’가 열리고 있다. 영국이 낳은 대가를 기리며 만든 이 상은 그간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안토니오 곰리(Antony Gormley),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등 많은 현대미술의 큰 작가들이 스쳐갔다. 그 만큼 ‘터너 프라이즈’는 파격적인 작가들에게 수상을 안겨줬다. 올해의 예비 작가 4인의 전시 외에 테이트의 컬렉션인 터너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는 9월 중순부터 니키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과 호쿠사이(Hokusai)의 전시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그랑팔레는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1897-1900년도에 건립된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건축 당시부터 아르누보 스타일로 주목 받았으며, 프랑스 예술의 영광을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기획됐다. 1963년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 Malraux)에 의해 단 한 번의 개조 공사를 하게 되는데, 이는 그랑팔레에 갤러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호쿠사이 전시는 18~19세기 일본에서 그려지고 판각되어 출간된 책과 판화들의 전시다. 호쿠사이(北齊)는 그중 대표적인 작가로 오늘날 만화(漫畵)라는 명칭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 사람이다. 그의 다양한 그림들을 원화로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 프랑스인들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도 가득 나왔다. 열심히 들여다보는 푸른 눈의 관심이 또한 부럽다.


그 옆 전시관의 니키드 생팔 전(展)의 작가는 프랑스 출생으로 뉴욕에서 살다가 1951년 파리에 돌아왔다. 그녀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다. 11살 때 아버지로부터 강간당한 기억은 23살에 정신착란과 반복되는 자살시도로 폭발했다. 이때 치료차 접한 것이 그림그리기였다. 이렇게 시작된 예술세계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점차 예술혼의 위용을 드러냈다. 이 무렵 시작된 예술작업을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초기작들은 오브제를 이용한 다양한 드리핑 작업들이 주를 이룬다. 한결같이 도전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창출한다. 이는 여자의 역할이란 것에 대한 근본적인 아픔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머리칼과 장식들에는 끝없이 인형(사람)들이 달라붙고 허황한 이물질들이 덕지덕지 떠나질 않는다. <말과 신부>의 주인공인 또 다른 신부는 플라스틱 인형의 공격을 받으며 말위에 담담히 앉아 있다. 단단한 체구의 정갈하게 핸드백을 든 창녀는 천박하지 않다. 반면 임산부는 순종적이거나 조신한 모습이 아니다. 여자라는 이름의 고정관념을 깨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여자들의 몫”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녀의 예술에 대한 자신감은 어린 시절 충격에 대한 마음과 정신의 깊은 상처를 표현한 것 같아 초기작품들 앞에서 왠지 숙연한 마음이 든다.


1961년 그녀의 첫 전시는 흰옷을 입고 관람객들 앞에서 원색의 물감으로 채워진 오브제들을 흰 석고로 뒤덮고 그 화면을 향해 총을 쏘는 퍼포먼스다. 영상으로도 남겨진 이 퍼포먼스는 속으로부터 분출되는 물감들이 뿌려지고 흘러내려 굳어지는 방식이다. 전시장 작품들은 이런 흔적의 작품을 걸어 놓았다. 가부장사회와 폭력, 전쟁, 가난한 자들에 대한 멸시와 차별, 핵무기 등 세상의 악을 향해 총을 겨눈다. 그녀의 퍼포먼스는 단숨에 현대미술계의 주목할 만한 별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이러한 도전들이 두 번째 남편 장 팅클리(Jean Tinguely)와의 공동 작업으로 변화를 가져온다.


그녀의 대표적인 여성상인 <나나>(Les Nanas)는 그녀가 사격으로 파괴한 가부장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대신해 새롭게 도래한 모계사회의 상징이다. 풍만한 가슴과 큰 엉덩이, 자유롭게 취한 포즈와 춤이 터질 듯 강렬한 색깔들 속에서 밝고 평화로운 세계를 상징한다. 조각과 그림으로, 때로는 풍선과 무대 위의 댄서로 무궁무진하게 진화하며 그녀의 내면세계가 치유된 신화를 상징하는 마스코트가 된다.


전시장에는 회전하도록 설치된 <미의 세 여신>(The Three Graces,1999)이 있다. 색 타일, 유리, 거울 등으로 덮여있는데, 조명과 움직임에 따라 소재들이 화려하게 빛을 발한다. 현재 에디션 작품이 뉴욕미술관 앞에도 설치되어 있다. 큰 덩치에 비해 자유로이 움직이는 몸동작은 많은 고통을 이겨낸 대지의 여신이 흥겨워하는 신바람 나는 춤을 형상화한듯하다. 삶의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향해 대중과의 연계도 성공한 니키드 생팔의 저항과 자유로운 넋을 읽을 수 있다.


근래에 세 나라 수도의 미술관·박물관들을 돌아보면서 예술이란 명분은 참으로 크고 그 깊이가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경제기반이 창출된다. 삶의 시너지, 신의 축복이란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이를 누리려면 눈앞의 수익만 생각하지 말고 지속적인 투자와 믿음이 필요하다. 가는 곳마다 많은 인파를 헤치고 미술관을 나오며 마음으로 계속 되뇐다. 아, 대한민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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